
옥내 고상부(屋內高床部)를 지닌 일본 원시시대 수혈주거 내부 공간 분절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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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study aims to closely examine the methods of interior space composition and spatial segmentation of dwellings with indoor elevated pars, focusing on examples from the late Jomon period, Yayoi period, and Kofun period, where indoor elevated pars began to appear. It seeks to utilize this as fundamental research necessary to understand the prototype of interior space composition in traditional Japanese housing.
Through previous studies and related research, we briefly examined the general internal spatial composition of the pit dwellings as a living space, and explored the social and cultural aspects such as the physical characteristics of the indigenous people and family composition at that time. Additionally, we also discussed the definition and functions of the indoor elevated parts.Finally, the study summarized the methods and characteristics of the internal space composition of pit dwelling with a elevated parts based on three-sided and two-sided bed type.
The three-sided bed type uses the three sides as a bed, allowing for maximum bed availability. This can be found in the interiors of small to medium-sized pit dwellings from the early primitive era, where basic living activities such as eating and sleeping were carried out. The two-sided bed type uses the two side spaces as bedding space, while the remaining space is used for religious and ritual space, entrances, attached storage space, or work space.
Keywords:
Indoor Elevated Parts, Japanese Primitive Pit Dwelling, Segmentation of Interior Space키워드:
옥내고상부, 일본 원시시대 수혈주거, 내부공간 분절 유형1. 서론
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수혈주거(竪穴住居)는 구석기 시대 말기부터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일본 최초의 주거형식이면서 야요이(弥生) 시대 이후 남방으로부터 고상주거나 홋다테바시라(掘立柱) 평지 주거 등이 보급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일본 지역에서 그 모습을 보이고 있던 대표적인 주거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문자나 이를 통한 역사적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에 수혈주거의 구체적인 형상 등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해당 시기의 유적에서 발굴된 주거상 유구를 통하여 수혈주거의 평면 형태나 규모 및 주주(主柱) 형식 등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선행 연구인 ‘일본 초기 원시주거에 대한 입지와 평면 규모 및 형상 분석-구석기 시대 말기와 조몬(縄文) 시대 초창기 유적을 중심으로’(2023)와 ‘카나가와현 발굴 유구를 통해 본 일본 원시시대 수혈주거 변화 과정’(2024)을 통해서도 밝힌 바있다.
그러나 기존 연구에서는 주로 수혈주거의 평면 형태나 주주 형식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기 때문에 실제 당시 원주민이 거주하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 방법이나 각 내부 공간의 기능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은 취사나 가내 작업 및 취침 등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등 이른바 네마(寢間)와 도마(土間)1)가 함께 나타나는2) 원시적 일실(一室) 공간이면서 수혈주거의 보급이 확산되기 시작한 조몬 시대 중기 이후에는 기존의 생존을 위한 생활 공간과 더불어 정령이나 영령 숭배 등 원시 종교적 영향이 반영된 의례 공간이 공존하고 있는 등 일본의 민가나 주거에서 볼 수 있는 공간 구성 방법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혈주거 내부 공간 구성 방법에 대한 연구는 일본 주거 건축의 공간 구성 원류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논제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주(主柱)와 벽 사이의 공간에 도마 부분과 약 5~20cm 정도의 단차를 두고 이단식(二段式)으로 설치되는 옥내 고상부(屋內高床部)는 도마 부분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 공간과 침상이나 종교 의례 및 물품 보관 등으로 사용되는 비활동 부분을 구분하는 공간 요소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수혈주거 내부 공간의 성격과 분절 유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옥내 고상부가 나타나기 시작한 조몬 시대 말기나 야요이 시대 및 고분 시대의 사례를 중심으로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 내부 공간 구성 방법과 공간 분절 등을 심도있게 살펴보고, 향후 일본 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에 있어서의 원형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기초적 연구로 활용하고자 한다.
1.2. 연구의 범위 및 방법
본 연구는 일본 원시주거 가운데 옥내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 방법이나 이에 따른 기능별 공간 분절 유형을 살펴보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를 위한 주요 연구 방법 및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선행연구와 관련 연구를 통하여 생활 공간으로서의 수혈주거의 일반적인 내부 공간 구성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으며 당시 원주민의 신체적 특징이나 가족 구성 등 사회문화적 측면에 대한 고찰 및 기 발굴된 유적이나 주거상 유구 등의 사례를 통하여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 분절 모델과 그 특징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본 연구의 주요 키워드인 옥내고상부에 대한 정의나 기능 등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하였다.
다음으로 옥내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 내부공간 분절 유형을 살펴보기 위하여 유형 분류를 위한 틀과 범위 및 전제를 설정하고 옥내고상부가 주로 침상으로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내부공간을 2면 침상형과 3면 침상형으로 구분하였으며 각각의 유형에 해당하는 사례를 통하여 각 유형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사례는 옥내고상부를 지니고 있으며 수혈주거 내부 생활을 유추할 수 있는 토기 등의 식기류 혹은 석봉(石棒) 및 석단(石壇) 등의 종교적 유구가 발견되거나 발굴 바닥면의 경화(硬化) 정도가 확인된 유적이나 유구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마지막으로 앞의 연구 내용을 정리하여 옥내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 방법과 특징을 정리하였다.
연구의 시기적 범위는 일본 역사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따라 기본적으로는 원시시대 수혈주거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옥내고상부가 조몬 시대 후기나 야요이 시대 출현하는 점에 주목하여 주로 이 시기의 옥내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 내부 공간을 중심으로 한정하였다. 조몬 시대 중기 이전의 수혈주거의 경우, 당시의 내부 공간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나 주거상 유구가 많지 않을뿐더러 규모도 대부분 소규모이고 내부 공간 또한 취사나 취침 등 기본적인 생활이 이루어지던 일실(一室)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수혈주거 내부공간에 대한 논의는 필요한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공간적 범위는 당시의 유적에 대한 발굴 기록이 존재하는 대상 지역으로 한정하였으며 역사적 발전 및 변화 정도가 급격하지 않았던 원시시대 특성 상 후대의 내부 공간 구성은 선대의 그것과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홋카이도 등의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도 연구 범위에 포함하였다. 또한 분석 대상은 주로 주거나 주거에 준하는 행위가 이우러지는 건축물에 한정되어 있으며 공공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대형 수혈주거 등은 연구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1.3. 선행 연구 검토 및 연구 차별성
일본 원시주거에 대한 연구는 당시의 유적 발굴 등이 활발해진 1960년대를 기점으로 발굴 유적에 대한 개별 연구를 비롯하여 이시노 히로노부(石野博信)의 『일본 원시 및 고대 주거 연구(日本 原始·古代住居 硏究)』(吉川弘文館, 1990)나 미야모토 나가지로(宮本 長二郎)의 『일본 원시 고대의 주거건축(日本原始古代の住居建築)』(中央公論美術出版, 1996) 등 원시주거를 시대별로 종합한 연구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시대별 연구는 주로 발굴 조사 결과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원시시대 수혈주거의 평면 형태나 변천 과정 등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수혈주거의 물리적 측면을 연구하는데 유익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수혈주거의 내부공간 구성 방법이나 공간 분절 등을 다룬 연구는 타니구치 야스히로(谷口 康浩)의 『조몬시대 수혈 가옥에 나타나는 공간 분절과 심볼리즘(縄文時代の竪穴家屋にみる空間分節とシンボリズム)』(2010)이나 아사카와 시게오(浅川 滋男)의 『수혈주거의 공간 분절에 관한 복원 연구(竪穴住居の空間分節に関する復原研究)』(2000) 등이 있으며 기타 발굴 및 복원에 기초하여 생활 공간 등을 부분적으로 살펴본 연구로는 후쿠시마 마사키(福島 雅儀)의 『복원적 시점에 의한 수혈주거적의 발굴조사(復元的視点による竪穴住居跡の発掘調査)』(2004)나 타가 시게하루(多賀茂治)의 『야요이시대 수혈주거의 형태와 기능(弥生時代竪穴建物のかたちと機能)』(2021) 등이 있다. 또한 수혈주거 내의 옥내고상부에 대한 연구로는 키시오카 타카히데(岸岡貴英)의 『옥내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 유적에 대하여-긴키 지방의 사례를 중심으로(屋内高床部を持つ竪穴式住居跡について―近畿地方の事例から)』(1996) 등이 있다. 또한, 홋카이도 수혈주거의 내부공간 구성을 알 수 있는 연구로는 오오큐 토모키(大給友樹) 등의 『오호츠크 문화의 선형 주거-토코로챠시 유적 오호츠크 문화 9호 주거적의 복원(オホーツク文化の船形住居-トコロチャシ跡遺跡オホーツク文化 9号 住居跡の復元)』(2010) 등이 있으며 내부공간 구성을 살펴보기 위해 필요한 출입구 등에 대한 연구로는 고마기노 토모히로(駒木野智寬)의 『조몬시대의 동북지방에 있어서의 수혈주거지의 출입구 위치(縄文時代の東北地方における竪穴住居址の出入口の位置)』 등이 있다.
이처럼 일본의 경우는 이미 원시시대 수혈주거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재에도 원시주거나 수혈주거 등에 대한 발굴은 물론 이에 대한 자료 편찬이나 복원 사업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원시주거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계속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원시주거에 대한 연구는 고영훈의 『한국과 일본의 원시주거 형태에 관한 연구(1)』(1992) 등이 있으나 주로 우리나라의 원시주거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일본의 원시주거나 수혈주거에 대한 연구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최근 들어 김진모‧김영훈의 『일본 초기 원시주거에 대한 입지와 평면 규모 및 형상 분석-구석기 시대 말기와 조몬 시대 초창기 유적을 중심으로』(2023)나 백승관‧김영훈의 『카나가와현 발굴 유구를 통해 본 일본 원시시대 수혈주거의 시대적 변화』(2024) 등이 나타나고 있으나 주로 일본 원시 수혈주거에 대한 평면 변화나 시대적 변천 등에 관한 연구에 그치고 있어 내부 공간 구성 방법이나 공간 분절 등에 대한 논의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본 연구는 상기 일본의 관련 연구를 참고하여 국내에서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은 옥내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내부공간 구성방법 및 특징 등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향후 일본 주거 건축 건축에 내재하는 공간구성 방법과의 연관성 등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 연구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 및 기존 연구와의 차별성이 있다.
2. 이론적 고찰
2.1. 수혈주거 내부 공간 구성 개요
김진모‧김영훈의 선행연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시시대 초기 수혈주거는 일반적으로 직경 2m~5m 전후의 원형이나 타원형 및 방형 평면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벽측이나 내부 한 쪽에 4~8개의 주주(主柱)가 설치되고 내부에 자갈더미(礫群)3)나 화로(炉) 그리고 후대의 카마도 등의 조리 및 난방 시설과 저장혈(貯藏穴) 혹은 주구(周溝) 등의 간단한 설비 및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는 일실(一室) 공간 형식을 보이고 있다[1,2]. 이 같은 공간 구성은 수혈주거의 규모나 단식로(單式炉) 혹은 복식로(複式炉) 등의 화로의 유형이나 크기, 성별에 따른 공간 구분 및 내부 기능 분화에 따른 부속 공간의 유무 혹은 원시 종교 등의 영향에 따른 제례 공간의 유무 등에 따라 내부 공간 구성이 어느 정도 변화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취침이나 휴식 등을 위한 공간이 병존하고 있는 일실(一室) 구성이라는 점은 모든 수혈주거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수혈주거 내부의 화로는 약 1.0m×0.7m 정도 규모의 ㄷ자형으로 구성되는 돌로 둘러 싼 화로(石囲い炉) 등이 일반적이며 그 주변에서 음식 탄화물4)은 물론 자갈 파편 등이 발견되고 있는 것을 보면 수혈주거 내부의 화로를 중심으로 한 공간은 활동 및 작업 공간, 즉 일종의 주거 내 공용 공간인 도마(土間)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백승관, 김영훈의 선행 연구[3]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조몬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장축선상의 한 쪽에 화로를 설치하고 그 반대편에 출입구5)가 설치되었으며[2] 입구 부분의 벽 측에 매장 용도의 우메가메(埋甕)6)나 저장혈(貯藏穴) 등이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출입구 및 주변 부분은 물품 보관이나 매장 등의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화로의 주변과 벽 사이의 공간은 식물을 엮어 만든 깔판 등이 설치되거나 화로 부분보다 한 단 정도 높게 옥내 고상부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벽측 공간에서는 식사에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돌 접시(石皿)나 토기 등이 발견되고 입구로부터 가장 안쪽에는 제단이나 토우(土偶) 등 의례용 물품들이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보아 화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내부 공간은 휴식이나 취침 및 제례 행위를 위한 일종의 비 활동 공간 혹은 사적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단식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복식로(複式炉)가 설치된 수혈주거의 경우, 일반적으로 출입구에 가까운 곳에 설치된 복식로를 중심으로 조리나 난방 등 일상적인 생활 기능은 물론 불의 신에 대한 제사적 역할이 이루어지는 등의 중심 생활 공간으로 해석[4]되기도 하지만 이 부분을 제외한 공간 활용은 역시 단식로가 설치된 수혈주거와 거의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이 처럼 작업이나 조리 등을 위한 활동 공간 혹은 공용 공간인 도마(土間)와 출입구 부분의 다용도 공간 및 화로와 출입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3면이 취침 및 제례나 물품 보관 등을 위한 비활동 공간 혹은 사적 공간으로 구성되는 수혈주거 내부 공간 구성 방법은 수렵이나 채집 등을 위한 임시주거나 간혈주거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구석기 시대 말기는 물론 수혈주거가 본격적으로 정주 주거로 사용되기 시작한 조몬 시대 중기 및 그 이후 농경 생활이 시직된 야요이 시대나 평지 주거 등과 혼용되던 고분시대에도 5세기 경 아궁이(竈, カマド)가 화로를 대체하기 전까지는 수혈주거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일례로, 사이타마 현(埼玉県) 야마자키야마(山崎山)유적의 고분시대 전기 9채의 수혈주거의 경우, 중심부에 지상로(地床炉)가 설치되어 있고 출입구 부분에 저장혈이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 부분보다 한 단 높게 고상부가 설치되는 사례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고분 시대 전기에도 이 전의 수혈주거의 내부공간 구성이나 분절 등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면을 30~40cm 정도 파들어 간 전형적인 4본 주주형식의 방형 혹은 장방형 평면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규모 또한 큰 것이 5m×4m, 작은 것이 2.5×3m 등 전체적으로는 사방 5m 전후의 것과 사방 3m 전후의 비교적 중소 규모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이전의 수혈주거의 주주 형식이나 규모 등이 거의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7)이는 최소한 고분 시대 전기 혹은 카마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화로를 중심으로 작업공간이 배치되고 3면 혹은 4면 벽측에 휴식 및 취침 공간의 배치되는 수혈주거 내부 공간 구성 기법이 계속적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고분 시대 초기 수혈주거 유구 가운데 하나인 호도타‧코진마에 유적(保渡田‧荒神前遺跡) H구 1호 주거의 경우, 건물 내부의 최고 높이가 2.7m, 보와 도리 부분의 높이가 1.8m, 벽측 공간의 높이가 약 0.9m 정도로 나타나고 있는8) 사실[5]이나 유골 분석 등을 통한 원시시대 원주민의 평균 신장이 조몬인 남성은 약 162.7cm 여성은 약 149.3cm[6]9)이고 이후 야요이 시대나 고분 시대에는 각각 남성이 165cm 및 163cm, 여성은 남성보다 약 10cm 정도 작은 151cm 전후의 신장이었다는 사실을 참고할 경우, 수혈주거 내부 단면 구성은 취사나 이동 등을 위해 직립 보행 가능한 입식공간이 필요한 중앙부의 공용 공간의 높이가 최소 165cm 이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알 수 있으며 주주와 벽 사이의 공간에서는 1m 이하의 공간에서 좌식이나 와식 생활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Fig. 2.).
수혈 주거 내부 공간의 규모를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인 가족 구성과 거주인수 등에 대해서는 문헌이나 자료 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동안 발굴된 수혈 주거의 규모나 유적에서 출토된 인골 등을 분석한 결과 등을 종합할 경우 약 5~8인 정도의 인원이 수혈 주거 내에서 공동으로 거주하는 3세대를 포함하는 확대 가족이거나 혹은 핵가족이 주류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그 동안 발굴된 수혈주거 가운데 일반적으로는 15m2~25m2 정도의 규모가 가장 자주 발굴되고 있으며[2] 수혈주거 내 거주인 1인당 약 3m2 정도로 계산하는 세키노(関野) 공식10)을 적용할 경우와도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 야요이 시대나 고분 시대에도 기본적으로 조몬 시대의 주거 양식이나 규모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이 같은 가족 구성은 원시시대 전반에 걸쳐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2. 수혈주거 내부 공간 분절 모델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 방법이나 공간 분절에 대해서는 이미 미즈노 마사요시(水野正好, 1969)가 조몬 시대 후기로 추측되는 도쿄(東京)의 니시아키루(西秋留) 유적의 제 1호 주거와 나가노(長野)의 토나이(藤内)의 제 9호 주거, 토쿠리(徳久利) 유적의 제 7호 주거 등 조몬 시대 수혈주거 주거상을 대상으로 출입구의 반대편 벽측 안쪽 공간에 입석(立石), 배석(配石), 돌출부(突出部) 등의 제례 시설로 추정되는 특수 구조가 발굴되고 중앙부에 화로가 위치하고 있으며 나가노의 수혈주거에서는 안쪽에서 보았을 때 좌측에서 토우(土偶)와 우메가메(埋甕), 우측에서는 석봉(石棒) 등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출입구와 반대편 안쪽은 제례공간,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조리 및 작업공간 그리고 안쪽으로부터 볼 때 내부공간의 우측과 좌측이 남성과 여성 공간 등으로 구분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Fig. 1.)[7].11)
물론 이 같은 공간 분절 방식은 모든 수혈주거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바야시 타라(大林太良)나 사사키 다카아키(佐々木高明) 등은 북방 유라시아 수렵채집 민족의 주거 공간 분절 모델을 참고하여 남녀의 공간을 좌우보다는 상하로 구분하는 것을 제안한 바 있으며 기리하라 타케시(桐原 健)는 오늘날 민가의 이로리(囲炉裏) 주변 자리 배치를 참고하여, 출입구 반대편의 가장 안쪽을 주인의 거처(ヨコザ, 橫座), 그 좌측이 주부나 여성의 자리(カカザ, 嬶座), 대면 부분을 남성이나 손님 자리(キャクザ, 客座) 그리고 입구 부분의 장소를 노인이나 아이들의 자리(キジリ, 木尻)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한 아사카와 시게오(浅川滋男)는 수혈주거 내부 공간을 좌우 및 상하로 구분하는 축을 상정하고 화로 부분과 출입구 부분에서 발견되는 우메가메(埋甕)와 안측 벽 부분에서 자주 발견되는 석봉(石棒)이나 석주(石柱) 등으로부터 상좌(上座)와 하좌(下座) 및 우좌(右座)와 좌좌(左座)로 구분하고 있다[7]. 이와 유사하게 쿠시하라 코이치(櫛原 功一) 또한 조몬 시대 중기의 수혈주거 내부공간 구성에 대하여 석명(石皿)이나 대석(台石), 석봉, 석주, 환석(丸石), 흑요석(黒曜石) 저장혈 등의 위치에 따른 남녀 공간을 연구한 결과, 좌측 남성 공간 우측 여성 공간의 좌우 2분할 공간 구분을 밝힌 바 있다[8].
또한 홋카이도의 아이누 족 전통 주거인 치세(チセ)와 같은 민속 사례에서는 중앙 부분에 화로가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 측에서 화로의 좌측이 주인 부부의 자리, 우측이 어린이나 기타 다른 가족의 자리 등으로 구분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 입구 근처가 여성의 자리이며 안쪽 부분이 남성의 자리로 설정되고 있으며12) 안쪽에는 제례 시 신이 출입 가능하도록 창이 설치되기도 한다. 따라서 치세의 경우, 입구측으로부터 보았을 때 좌측 공간이 우측공간보다 상위로 볼 수 있으며 출입구의 반대편 벽 부분이 상위 출입구 부분이 위계상 낮은 공간으로 설정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남녀 공간 구분은 세계 각지의 민족 사례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공간 인식이나 세계관과의 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분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은 수혈주거가 일실 공간이라해도 내부 공간 구성에는 일정한 규율이 적용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출입구와 화로를 연결하는 중심축을 기준으로 가장 안쪽이 제례 공간이나 주침실, 왼쪽과 오른쪽이 각각 생활공간과 취침 및 휴식 공간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부분은 조리나 작업 등을 위한 도마(土間)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당시 수혈주거가 비록 일실공간으로 구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심축에 따른 작업별 및 성별에 따른 공간 분절은 물론 공간의 중요도에 따른 위계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를 간단한 도식으로 표현하면 Fig. 2.와 같다.
2.3. 수혈 주거 옥내 고상부(高床部)
옥내 고상부 혹은 침대 형상 유구(ベッド状遺構)는 주주(主柱)와 측벽 사이에 수혈주거의 벽을 따라 설치된 것으로 도마(土間) 부분과 약 5~20cm 정도의 단차를 두어 이단식(二段式)으로 설치되는 옥내 시설을 말한다. 옥내 고상부의 용도는 침대나 수납시설 혹은 제단 등의 종교적 공간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홋카이도(北海道)에서는 조몬 시대 전기 후엽부터 중기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관동(關東) 지역에서는 고분 시대 이후, 서일본 등지에서는 야요이 시대 중기부터 고분 시대 전기에 걸쳐 자주 나타나고 있으나,13) 최근 발굴 조사 결과가 증가함에 따라 일본 각지에서 조몬 시대 중기 이후에도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서일본의 경우, 야요이 시대 중기로 추측되는 히로시마의 누노카케(布掛) 유적 SB4 수혈주거에서도 원형 벽체를 따라 옥내 고상부가 발견되는 사례 등을 보면 야요이 시대 중기 이후부터 옥내 고상부가 자주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0]. 그러나 효고현의 히가시하리마(東播磨) 등의 지역에서는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가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효고현의 단바(丹波) 지역의 경우 전체 수혈주거 가운데 약 10% 미만에 그치는 경우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9].
폭 약 1m 전후, 높이 약 10~15cm 정도 옥내 고상부가 다수 발견된 큐슈(九州) 사가현(佐賀県)의 야요이 시대 중기 요시노가리(吉野ヶ里) 유적의 수혈주거나 야요이 시기 중기로 추측되는 후쿠오카현 카노야시(鹿屋市)의 요시가자키(吉ヶ崎) 유적의 2SI01 수혈주거에서 북측과 서측에 각각 약 0.4m×1.7m, 0.5m×1.1m 규모의 옥내 고상부가 지면으로부터 약 20cm 정도 높게 설치된 상태로 발굴되고 있는 사실을 보면 옥내 고상부의 규모는 폭 약 1m 전후, 높이 약 10~20cm 정도이며 내부 공간의 한쪽이나 양측 및 벽을 따라 3면내지 4면에 모두 설치되는 경우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큐슈(九州) 남부의 경우 야요이 시대 중기에는 외부로 4면에 걸쳐 고상가를 확장된 이른바 꽃잎형 평면이 나타나기도 한다[9].
옥내 고상부가 가장 성행한 야요이 시대 중기 중엽부터 고분 시대 전기까지 긴키(近畿) 지역의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유형을 연구한 키시오카 타카히데(岸岡貴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혈주거의 옥내 고상부는 벽의 한쪽 면에 설치하는 경우부터 벽의 4면에 걸쳐 설치하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을 보이고 있으나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유형은 4면 전체에 옥내고상부를 설치하는 유형이며 그 다음으로는 출입구 부분을 제외한 4면에 옥내 고상부를 설치하는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Fig. 3.)[10]. 이는 수혈 주거 중심부의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도마(土間) 부분과의 공간적 구분을 위해 옥내 고상부가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침실 공간 이외에도 물품 수납이나 종교적 의례 등의 행위가 옥내 고상부를 통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Morphological classification diagram of indoor elevated floor, quoted from Takahide Kishioka (1996)[10]
그러나 고분(古墳) 시대에는 수혈주거 내부 벽의 한 면이나 혹은 2면만을 침상으로 사용하게 된다[2].14) 이는 5~6세기 경 기존의 화로를 대신해 한쪽 벽면에 아궁이(竈)를 설치하고 그 주변에 저장혈 등이 위치하게 됨에 따라 내부 공간도 조리공간, 보관 공간, 작업 공간 및 침실 및 휴식 공간 등으로 기능적 분화가 발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면에서 볼 때, 옥내 고상부의 주요 기능은 침상의 역할이었음을 추론 가능하다.
3.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분절 유형
3.1. 분류의 틀과 범위 및 전제
수혈주거 내부 공간에서의 실제 생활이나 내부 공간 활용 및 이에 따른 공간 분절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실제 생활에 수반되는 거주자의 행동은 물론 거주인 수나 가족 구성 등의 인문학적 배경이나 화로 등의 설비 및 도구 혹은 실제 생활에 사용될 것으로 추측되는 토기류나 침상 등의 흔적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8]. 특히 원시 수혈주거의 경우 현존하는 실물 유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혈 주거 내에서의 특정 행위는 수혈 주거의 평면이나 주주 배열 형식 등 건축적 및 구조적 측면보다는 그곳에서 발굴된 항아리(壷)나 독(甕) 및 도기나 접시 등을 놀려 놓는 기대(器台) 등의 저장 용기나 소형 및 대형 사발(鉢), 식음용 잔(高杯) 등의 생활 도구 혹은 석봉(石棒)이나 석대(石臺) 및 유리 구슬 등 제례나 의식에 사용되는 물품 등의 존재 여부와 분포 정도에 의해 추측 가능하다.15) 또한 내부 공간 내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공간의 구분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돌접시(石皿)이나 대석(台石), 석봉(石棒), 입석(立石)이나 석주(石柱), 환석(丸石) 및 저장혈(貯藏穴) 등의 존재 여부와 발굴 장소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8].16) 이 밖에도 수혈주거의 규모나 바닥면적, 평면의 형상, 기둥과 기둥 간의 거리, 입구와 화로를 연결하는 중심축선의 존재 여부, 자갈더미(礫群)나 화로의 위치 및 내부 공간 내의 단차나 옥내 고상부(屋內高床部) 등의 존재 혹은 바닥 부분의 경화(更化) 정도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수혈 주거 내부의 거주인 수나 성별에 따른 공간 구분 및 당시 원주민의 신체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들을 다루기에는 그 내용이 광범위하고 원시시대 주거 유적이나 주거상 유구의 발굴 상태가 완전하지 않을뿐더러 내부의 토기 및 저장혈 등의 발굴 정도도 내부 공간에서의 생활을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본 연구의 주요 목적인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만으로 그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미 발굴 조사 완료된 수혈주거 유적이나 주거상 유구 가운데 옥내 고상부를 지니고 있으며 주주(主柱) 구성 여부와 화로의 존재 여부 및 내부 생활을 알 수 있는 바닥 부분의 경화(更化) 정도나 토기 등의 유물이나 유구가 존재하는 사례에 한정하여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앞의 2.3.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옥내 고상부의 용도가 일반적으로 침대나 수납시설 혹은 제단 등의 종교적 공간으로 추측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옥내 고상부가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 공간인 도마 부분과 취침 등의 비활동 공간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고 있으며 야요이 시대의 4면 옥내 고상부가 고분 시대 후기에는 2개의 벽면에 설치된 침상 공간만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등을 통해 옥내 고상부의 주요 용도가 침상 공간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옥내 고상부의 침상 부분의 개수나 위치 및 비 침상 부분의 기능이나 용도 등을 기준으로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 유형을 분류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옥내 고상부(Elevated part;E)의 용도나 기능을 침상용 공간(Bed space;B), 수납용 공간(Storage space;S), 종교 의례용 공간(Relirious space;R)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상기 기능 이외의 토기나 칠 등의 가내 작업 공간(Working space;W)이나 용도가 확정되지 않은 기타 공간(Uncertain space;U)로 구분하여 각각을 약어를 사용하여 표시하고 있다. 또한 옥내 고상부가 내부 공간의 일부나 벽의 한쪽에 설치되는 경우부터 2면, 3면 및 4면에 걸쳐 설치되는 사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4면에 걸쳐 설치된 고상부는 4E, 3면에 설치된 고상부는 3E 등처럼 각 용도별 공간의 개수는 각 용도를 나타내는 약자 앞에 개수를 함께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키시오카 타카히데(岸岡貴英)의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옥내 고상부는 일반적으로 4면 벽면에 걸쳐 설치되는 유형이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10] 본 연구에서는 주로 벽측 4면에 설치된 옥내 고상부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출입구 부분 및 이와 인접한 저장 공간이나 작업 공간 등은 침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본 연구에서는 침상 공간의 개수를 기준으로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 내부 공간 분절 유형을 각각 2면 침상형(4E-2B), 3면 침상형(4E-3B)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옥내 고상부가 나타나기 시작한 조몬 시대 말기나 야요이 시대 및 고분 시대의 사례를 중심으로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 내부 공간 분절 유형을 살펴보고 있다.
또한 유적 발굴시 훼손이나 당시 수혈주거 중개축 등에 따라 옥내 고상부의 단절 부분의 발생한 경우도 주변 옥내고상부를 통해 연결 정도가 파악 가능하면 옥내 고상부가 설치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출입구를 설치하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단절된 상태로 나타나는 옥내 고상부도 하나의 연속된 옥내 고상부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 방법은 앞의 2.2.에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부나 화로 근처 공간이 조리 및 작업 공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 공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거나 필요한 경우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또한 옥내 고상부가 자주 나타난 야요이 시대 중기 이후부터 고분 시대에는 수혈주거 구조 형식은 일반적으로 4본 주주 형식의 장방형 옥은 원형 평면이나 본 연구에서는 주로 옥내 고상부의 기능이나 속성에 따른 내부공간 분절을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수혈주거의 주주의 개수나 평면 형식 등은 중요한 고려 사항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3.2. 옥내 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 내부 공간 분절 유형
수혈주거 내부의 상하 및 좌우 공간 가운데 출입구가 위치하는 부분을 제외한 3면 벽면부에 취침이나 휴식 등을 위한 옥내 고상부를 설치한 유형으로, 앞서 말한 키시오카 타카히데(岸岡貴英)의 연구에 따르면 옥내 고상부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난 야요이 중기 중엽부터 고분 시대 전기까지 가장 자주 나타나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10].
5주주 형식에 복식로17)를 지니고 있으며 그 규모는 직경 약 6m, 바닥 면적 약 28m2 정도의 규모를 보이고 있는 후쿠시마현 소소(相双) 지역의 조몬 시대 중기를 대표하는 집락지 유적인 바바마에(馬場前) 유적의 86호 주거상 유적(Fig . 4.)의 경우[17], 화재로 인해 소실 주거이기 때문에 화재 직전에 당시 사용하고 있던 도구나 토기의 발굴 분포 및 바닥 부분의 경화(硬化) 정도 등을 통하여 내부 공간의 구성 및 활용 방법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유적의 수혈주거 내부공간의 지면 경화 정도에 대한 조사 결과, 복식로의 전정부(前庭部)와 5개의 주주혈을 연결하는 바닥 중앙부에 경화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이 거주인의 일상적인 생활 공간인 도마(土間)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전정부를 제외한 벽 주변에서는 거의 경화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보아 이 부분이 일상적인 거주 공간의 영역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복식로의 전정부가 벽에 접하여 경화 흔적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이 수혈주거의 출입구나 혹은 출입구에 직결되는 부분임을 추측할 수 있다. 저장혈은 출입구 부분과 복식로 부분에 인접하여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복식로 대척 지점에 바닥보다 약간 높은 단상(段状) 부분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주변으로부터 석봉(石棒)을 포함하여 토기와 석기 등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토우(土偶), 암우(岩偶)나 석판, 석봉(石棒), 석도(石刀)나 석관(石冠) 등이 조몬(縄文) 시대 제사나 주술 및 정령 신앙 등에 관련된 유물이라는 사실18)이나 후쿠시마현 미하루마치(三春町)의 나카다이라(仲平) 제2호 수혈주거 유적(3차)의 경우처럼 단상 주변 부분에서 석봉이나 석주(石柱) 등 종교 관련 유구가 발견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이 부분이 종교적 행위가 이루어진 공간으로도 추측 가능하다[11].
그러나 해당 수혈주거 유적에서는 단상 전면에서 소형 토기나 밤 혹은 도토리 같은 견과류를 부셔서 가루로 만드는 데 사용한 스리이시(磨石) 같은 도구 등이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있으며 그 주변에서는 이시자시(石匙) 등의 마제석기류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이 공간을 종교적 공간으로 특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토우(土偶) 등의 종교적 유물은 조몬 시대 후기 이후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조몬 시대 중기 유적인 해당 수혈주거는 본격적인 종교나 제례 의식이 성행하기 전 과도기적인 종교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음도 추측 가능하다.이 같은 면은 출입구 반대측 가장 안쪽 공간이 일상적인 휴식이나 작업 공간은 물론 제례나 종교 공간으로서의 용도가 혼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복식로 전정부부터 북측의 단상에 이르는 일직선 부분과 각 주주와 벽체 사이의 공간에서는 바닥면의 비경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이 부분은 주로 물건이나 집기를 보관하는 장소이거나 휴식 등을 위한 공간으로 추측되고 있다[17]. 또한 복식로 우측 주주 부분에서 유기질 박편이나 석핵(石核) 및 돌망치(叩き石) 등의 파편이나 조각들이 모여 있는 석기 집중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실내 작업 등을 위한 공간으로 추측 가능하며 반대 편 주주 사이나 단상부와 석기 집중부 사이의 공간에서는 특별한 유구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비 활동 공간으로 추측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몬 시대 중기 이후 복식로 설치된 수혈주거의 주혈과 외벽 사이의 공간에서 옥내고상부로 추측되는 시설이 발견되고 있으며 후쿠시마현(福島県)의 히토츠마츠(一ツ松) 유적 30호 주거 유구나 와다이(和台) 유적 89호 주거 유구에서도 바닥보다 약간 높게 형성된 부분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4] 이 부분이 침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19)
이 같은 사실을 보면, 바바마에 86호 수혈 주거의 내부공간 구성은 복식로의 전정부와 연결되는 출입 공간, 복식로를 중심으로 하는 조리 및 난방 공간, 우측 주주 부분의 작업 및 휴식 공간 그리고 복식로 좌측과 우측의 주주 사이의 휴식 및 취침 공간 등으로 구분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으며 복식로 대척 방향의 종교적 공간이나 혹은 침실 공간이 혼재되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복식로의 주축 상에 출입구 시설과 제단상 유구, 입석(立石), 지상로(地上炉) 둥의 주요 시설이 일렬로 배치되고 있는 사실은 중심축에 의한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 공간 분절 유형으로 표현하면, 4면 옥내고상부 가운데 2면을 침상 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한 면을 종교적 공간을 겸하는 침상 공간으로 사용하는 유형(4E-3B/1R) 혹은 2면 침상과 1면 종교 공간 및 1면 작업 공간으로 구성되는 유형(4E-3B/1R_1W)으로 볼 수 있다(Fig. 4.)[11].
야요이 시대 후기 후반의 고베현 소재 타마츠타나카(玉津田中) 유적의 수혈주거 SH5001는 직경 약 7.6m, 바닥 면적 약 45m2의 중형 수혈주거로서 5주주(主柱)형식의 원형 평면을 보이고 있으며 중앙부의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도마(土間) 부분과 확연한 경계를 이루는 옥내 고상부가 원형 평면을 따라 다섯 개의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오각형 모양으로 설치되어 있다. 벽 일부가 없는 남서측 부분이 출입구로 추측되고 있으며 중앙 부분에 흙 방죽으로 둘러싸인 토갱은 다섯 개의 기둥을 연결하는 중심선보다 약간 출입구 쪽으로 치우쳐 설치되어 있다(Fig. 5.).
해당 사례에서는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앞의 사례와는 달리 바닥의 경화 정도에 따른 공간 구분보다는 유물의 사용 목적 등에 따른 공간 구분이 어느정도 가능하다. 이 유적에서는 총 41점의 토기와 숫돌 1개 및 흙으로 만든 둥근 구슬(丸玉)이 발견되고 있다. 토기류의 수량 구성은 단지 11점, 항아리 2점, 소형 사발 12점, 대형 사발 5점, 굽다리 접시 7점, 기물대(器台) 2점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13]. 이 밖에도 표면에 용이 그려진 듯한 항아리나 흙 구슬 등 종교나 제례 관련 물건으로 추측되는 유물도 함께 발견되고 있기는 하지만 발견된 토기의 대부분은 일반 생활에 사용되는 식기나 조리 기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수혈주거는 일반적인 일상 생활이 이루어진 공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개인용 식기로 여겨지는 굽 달린 그릇과 소형 사발의 개수는 각각 7개와 12개이나, 굽다리 접시 7개 가운데 받침 부분만 있는 것 1개와 상부 접시 부분만 있는 것 1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총 6개의 굽다리 접시가 발견되고 있고 소형 사발 12개도 각각 2개씩 짝을 이루고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굽다리 접시 1개와 소형접시 2개가 한 조를 이루는 구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총 6명의 인원이 거주한 것을 알 수 있다[13].20) 앞서 말한대로 해당 수혈주거의 규모는 약 45m2로 세키노(関野) 공식에 따르면 약 14명 정도가 거주 가능한 공간이나, 실제 6명의 인원이 거주한 것을 보면 1인당 평균 면적인 약 3m2보다 두 배가 넘는 약 7.5m2의 면적을 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취침이나 휴식 및 조리 등의 필수적 생활 활동 공간 이외에 저장이나 작업 및 종교적 공간 등이 여유있게 설정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혈주거 내부의 고상부와 그 내부의 한 단 낮은 곳에서 토기류가 주로 출토되고 있으며 그 분포는 발굴 장소의 남측에서는 단지(壺)와 항아리(甕), 동측에서는 주발(鉢) 그리고 북측에서는 굽다리 접시(高杯) 등이 발견[13] 되고 있음을 보면, 남측이 저장 공간이고 북측 고상부를 중심으로 좌우측 고상부가 식사 및 취침 등 휴식 공간으로 구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측과 서측 및 북측의 주주 사이의 공간이 휴식이나 취침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토갱이 설치된 중앙부가 공용 공간이나 작업 공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토갱(土坑)이 음식 재료 저장을 위한 저장혈은 물론 묘나 무덤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해당 유적에서 용이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는 항아리나 흙 구슬 등 제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물품도 발견되는 것을 보면 토갱이 묘나 무덤이었을 가능성도 존재하고 또한 이를 위한 종교적 행위가 내부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해당 사례는 원형 벽을 둘러싸고 옥내 고상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출입구 부분을 제외한 3면에 휴식 및 취침용 공간이 마련되는 형식으로 볼 수 있으나 발견된 유물로 미루어보아 일종의 제례 행위도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추측 할 수 있다. 이 경우 옥내 고상부 3면 가운데 동서측 2면을 침상으로 사용하고 북측 고상부를 종교적 공간으로 설정하는 유형(4E-2B_1R)으로 볼 수 있으나 내부에서 흙 구슬 등 종교나 제례 관련 물건으로 추측되는 유물과 함그릇이나 사발 등 일상 생활용 도기가 함께 발견되는 것을 보면 침상과 종교적 행위를 겸하는 공간 유형(4E-2B_1R/1B)으로도 볼 수 있다(Fig. 5.).
2면 침상 유형은 수혈주거의 4면 옥내 고상부 가운데 좌우 부분이나 2개의 측면 공간을 침상 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은 종교의례용 공간이나 출입구 부분 및 이에 부속되는 수납 공간이나 작업 공간 등으로 사용하는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출입구의 반대편 벽측 공간이 취침이나 휴식용 공간보다는 제례나 의식 공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입구가 지면이 아니라 지붕 상부에 설치된 경우는 가장 안쪽 벽 공간 및 그곳과 대척되는 공간을 제례나 의식 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좌우측 공간을 휴식 및 취침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2면 침상형 내부공간 구성은 오호츠크 문화 시기21) 홋카이도의 수혈주거22)에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시기의 수혈주거의 내부 중앙 부분에는 일반적으로 돌이나 나무로 둘러싼 화로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 화로를 둘러싸고 ㄷ자 형의 점토 도마(土間)가 설치되어 있는 등 본토의 수혈 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오오츠크 문화의 주거는 5~8세기 기간 동안 거의 대부분 처마 아래 부분에 곰이나 에조 사슴 등의 머리나 사지를 묻는 골총(骨塚)이 존재하는 등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출입구는 통상 북방 유라시아인들의 텐트나 수혈주거의 공간 구성을 참고할 경우, 골총의 반대편이면서 바닥이 깔려 있지 않은 부분에 설치된 것으로 추측되나, 토코로챠시적 유적(トコロチャシ跡遺跡) 1호 수혈주거에서처럼 짐숭의 머리부분 골총 반대편 처마 쪽에 짐승의 사지를 묻은 골총 둥 두 개의 골총이 발견되는 경우에는 머리쪽이 주거의 안쪽이면서 다리 쪽을 출입구로 설정하는 아이누족 주거에서처럼 다리 쪽 처마 부분이 출입구가 될 수도 있다[14].
이 가운데 화재로 인한 소실주거(焼失住居)인 오호츠크 문화 15호 주거(オホーツク文化 15号住居)는 장축 약 14m, 단축 약 10m, 면적 약 125m2에 이르는 대형주거로, 중앙 부분에 이시코미 화로(石囲み炉)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를 ㄷ자로 둘러싼 형태로 약 35m2 정도의 점토 도마(土間)가 설치되어 있다(Fig. 6.). 도마 부분을 제외한 벽체와 기둥 사이의 공간에는 옥내 고상부가 설치되어 있다. 도마 부분에서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수혈주거 내부의 공용 유틸리티 공간 혹은 조리나 작업 등을 위한 활동 공간 등으로 추측 가능하며 주주(主柱)와 벽 사이의 약 1.2m~1.7m 정도의 옥내 고상부 부분에서도 다양한 소규모 토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이 개인의 거주 및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입구의 반대편에 설치된 골총은 각형을 이루는 도마 부분과는 달리 평행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가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기때문에 주거 내에서 중요한 부분을 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비교적 대규모 토기가 발굴된 지역은 음식 저장 등에 활용된 공간이나 혹은 골총 관련 서비스 공간으로 추청된다[14].
Comparison space segmentation in pit dwelling between general Okhotsk culture (by Ooi Haruo, 1979) and Okhotsk culture pit dwelling No. 15. [14]
따라서 오호츠크 문화 15호 주거의 내부 공간은 진출입구와 화로 및 도마를 중심으로 하는 공용 유틸리티 공간과 주주와 벽 사이의 거주인의 생활 및 휴식 공간 그리고 골총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제례 공간과 기타 서비스 공간 등으로 구성되고 있는 유형(4E-2B_1R)임을 알 수 있다(Fig. 6.). 이 같은 수혈주거 내부 공간 구성 방법은 오오이 하루오(大井晴男, 1979)[14]가 이미 오호츠크 문화주택의 일반적인 내부 공간을 화로와 도마 부분을 중심으로 하는 공용 유틸리티 공간, 주주와 벽 사이의 공간을 개인 생활 및 휴식 공간 그리고 골총이 위치한 출입구 반대편 벽측 부분을 종교 및 재례 공간 등으로 구분한 내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Fig. 5.). 그러나 골총이 하나만 발견되는 오호츠크 문화 15호 주거와는 달리, 오오이 하루오가 분석한 주거의 경우 골총 부분이 장축의 양쪽에 두 개 설치되고 있는 유형(4E-2B_2R)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2면 침상형의 경우, 좌우 측면의 공간을 침상 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두 공간을 종교적 공간 등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의 4면에 옥내 고상부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출입구는 지표면이 아니라 지붕이나 지상부로부터 직접 도마 부분으로 연결되는 형식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오호츠크 문화 15호 주거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출입구가 주거지에 직접 연결되어 설치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출입구 근처가 저장혈 등의 서비스 공간, 출입구 반대편 벽 측 공간이 제례 및 의례 공간 등으로 구분되며 휴식 및 취침 공간은 출입구 좌 우측에 위치하는 내부 공간 분절 유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 유적으로부터 특대형 6개, 대형 10개, 중형 13개, 소형 15개의 토기 이외에도 석기, 골각기(骨角器), 철기, 탄화목제품, 원반형 장식 등이 발견되고 있다[14]. 이 가운데 골총(骨塚) 측에서 발굴된 5개의 특대 토기에는 국수(ソーメン) 모양의 문양 이외에 동물 의장이나 기호 모양의 토기 장식(記号状貼付文) 등이 그려져 있는 등[14] 주주(主柱)와 벽 사이의 생활 공간에서 발견된 소형이나 중형 및 대형 토기와는 그 모양과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아마도 해당 생활 공간을 사용하는 가족 단위의 공유 용품이나 혹은 제사와 관련된 물품으로 추측 가능하다. 따라서 특대 토기가 총 6점 발굴되기 때문에 해당 수혈 주거에는 최소한 혈연적인 핵가족으로 추정되는 6가족 정도의 인원이 공동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으며[15] 한 가족 당 4, 5인을 상정하면 총 약 18인 내지 27인 정도의 인원이 거주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16].23)
혼슈(本州)의 서쪽 주고쿠(中国) 지역의 야마구치현(山口県) 유적보존지구(遺跡保存地区) 내에 위치한 야요이 시대 종말기의 제 19호 수혈주거는 2본 주주(主柱) 형식의 장변 약 5m, 단변 약 3.5m 의 장방형 형태를 보이고 있다(Fig. 7.). 해당 수혈주거의 규모가 약 17.5m2 정도의 규모임을 생각해보면 세키노(関野) 공식에 따라 약 5~6인의 핵가족이 거주 가능한 규모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20m2이하의 소형 수혈주거는 긴키(近畿) 지방의 경우 야요이 시대 중기 전반부터 종말기에 걸쳐 전체 수혈주거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가장 일반적인 주거 유형이었다는 사실[13]을 고려하면 이 지역과 인접한 해당 유구는 당시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을 파악하는데 유의미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수혈 주거 내부의 옥내 고상부는 조몬 시대 만기 이후부터 간헐적으로 나타나기는 하나 주로 야요이 시대 후기 중엽부터 고분 시대 전기에 걸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유적은 당시의 수혈주거 내부 구성을 보여주는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10].
해당 유구의 벽면의 주위에는 옥내 고상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북동변의 중간 부분에서 고상부가 단절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부분에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남서 변의 중앙 부분에는 장축 약 0.9m, 단축 약 0.25m 정도 규모의 토광(土壙)이 발견되었으며 그 내부에서 탄화물이 충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화로가 위치했던 공간으로 추측 가능하다(Fig. 6.)[17]. 내부에서 출입구 부분과 그 대쳑점에 위치하는 화로 부분 및 출입구 부분을 제외한 4면에 옥내 고상부의 유구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수혈주거 내부 공간구성은 화로와 출입구를 연결하는 부분과 옥내 고상부 부분 및 도마(土間) 부분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수혈주거 내의 옥내 고상부는 도마 부분을 제외한 4면이나 일부분에 설치되었으며 용도는 옥내 구분을 위한 시설물이나 침상 혹은 선반 및 허드레 물품 보관 장소, 종교 제단적 성격 등 다양하게해석되고 있기 때문에24) 해당 유구에서 발견된 고상부가 모두 침상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유적이나 유구 발굴 시 기존의 고상부가 파손된 상태로 발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수혈 주거의 출입구 근처는 저장 공간이나 허드레 물품을 보관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되고 화로 주변은 저장혈이나 식기 등의 보관 장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음을 생각할 경우 출입구 우측이나 화로 우측에 설치된 옥내 고상부 부분은 중앙부의 도마(土間) 부분과 단차를 두고 설치된 선반 용도로 추측 가능하다. 그리고 휴식이나 침실 공간은 좌측 주주와 벽체 사이의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주(主柱)와 벽체 사이의 4면에 걸쳐 분절된 상태로 설치된 옥내 고상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옥내 고상부는 화로 인접 부분을 제외하면 약 1m×3m 정도의 규모이며 나머지 부분인 화로 우측이나 출입구 근처의 고상부의 그 폭이 좁고 긴 형태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작게 나타나고 있다. 야요이 시대 후기 원형 평면의 수혈주거의 경우 폭 1m 전후의 고상부가 분절된 상태로 주거 내부를 돌아가며 설치되어 있으며 그 형상으로부터 이른바 분할 침상이라는 형태로 설치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키시오카 다타히데(岸岡貴英)의 연구 결과[10]를 보면 최소한 화로 좌측의 옥내 고상부는 침상 부분으로 추측되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5~6인의 가족이 함께 취침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규모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화로나 화덕이 출입구의 대척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출입구 대척 지점의 벽 측에 설치되는 종교적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침상 부분을 제외한 옥내 고상부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해당 수혈주거가 주거용이 아니라 토기 제작 등 특정 작업을 위한 작업 공간이었을 경우도 추측 가능하다. 또한 주주(主柱)와의 이격 거리도 좌측 옥내 고상부는 주주에 근접하여 설치되어 있으나 우측 부분의 옥내고상부는 주주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옥내 고상부의 규모나 주주로부터의 이격 거리 등을 고려하면 주주에 근접하여 적정한 면적으로 형성된 부분이 침상 공간으로 볼 수 있으며 우측 옥내고상부는 침상보다는 중앙 부분의 공용 공간이 확대된 다용도 공간이나 작업 및 물품 보관 등의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같은 면에서 볼 때, 유적보존지구의 제 19호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은 4면에 걸쳐 설치된 옥내 고상부 가운데 화로측의 부분 2면이 침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고 나머지 공간은 출입구측이 보관 등을 위한 공간 침상 부분 건너편이 작업 등을 위한 공간 및 물품 보관 공간 등을 겸하고 있는 유형(4E-2B/U+W)임을 유추할 수 있다.
고분 시대 전기로 추측되는 화재 소실 주거인 보존공원 제13호 수혈주거 유적의 경우, 4본 주주 형식의 동서 7.6m 남북 7.1m 정도의 방형이고 면적이 약 53.97m2로 약 16인이나 18인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주거 형태를 보이고 있다(Fig. 8.). 벽면을 따라 3면에 걸쳐 불연속적으로 옥내 고상부가 발견되고 있으며 남서측 부분은 도마와의 경계 부분이 불규칙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출입구는 남측 벽과 동측 벽에서 옥내 고상부가 단절된 모양으로 나타나는 남측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화로의 위치는 중심축 선상에 위치하는 기존의 수혈주거와는 달리 동측 벽에 부착된 상태로 설치되고 있는 것을 보면 5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아궁이의 초기 형태 혹은 이궁이가 도입되기 전의 과도기적 형태로 추측 가능하다. 특히 고분 시대에 아궁이가 유입되면서 저장혈 부분이 아궁이 반대편 벽측이나 중앙 부분으로부터 점차 아궁이의 좌우 측면에 위치하게 되는 사실[2]을 상기할 경우, 화로 혹은 아궁이의 건너편의 경계가 불분명한 측벽 부분은 저장혈 등의 보관 기능을 지니는 공간임을 유추 가능하다. 또한 출입구의 위치도 기존의 수혈주거와 달리 중심축 선상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화로 혹은 아궁이와 직각을 이루면서 설치되고 있다(Fig. 7.).
보존공원 제13호 수혈주거의 경우, 옥내 고상부의 흔적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발굴된 유물이나 바닥 경화 정도 등에 대한 사료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내부 공간 이용 패턴을 알기는 어려우나, 출입구와 카마도가 직각으로 설치되는 고분 시대 수혈주거의 내부공간 구성을 연구한 오카다 유우코(岡田侑子, 2024)의 연구 결과[5]를 참조하면 대략적인 내부 공간 구성 방법을 유추할 수 있다.
오카다 유우코는 군마현(群馬県) 하루나 산(榛名山) 분화 관련 유적 가운데 카마도가 도입된 5~6세기 경의 수혈주거군을 대상으로 수혈 주거 내부의 공간 이용 패턴을 분석하면서 벽측에 카마도와 저장혈이 인접하여 설치되고 이 부분과 직각으로 출입구가 설치되는 4본 주주형식의 고분 시대 대표적 수혈주거 유형에 대한 내부공간 활용 패턴을 카마도나 저장혈이 위치하는 취사 및 식기류 등의 보관 공간, 출입구와 이에 인접한 조리 및 저장 공간, 출입구 부분의 작업 공간 그리고 공용 공간과 기둥과 벽면 사이의 침상 공간 등으로 구분한 바 있다(Fig. 9.)[5].
Schematic of Interior space segmentation in pit house with Kamado in Kohun Period, cited fron Okada Yuko (2024)[16]
이 가운데 우선 공용 공간은 수혈 주거 내부 공간의 중앙 부분에 해당하며 이 부분에서는 내부 공간을 구분하는 도랑(間仕切り溝)이나 흙막이 등이 나타나고 있지 않고 경화된 흔적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거주자들이 빈번하게 사용한 공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카마도 주변에서 항아리나 소형 시루(甑) 등 조리용 토기가 발견되고 저장혈 주변에서는 음식을 담는 그릇(坏) 등이 출토된 미츠데라Ⅱ유적(三ツ寺Ⅱ遺跡)의 5-27호 수혈주거의 경우처럼, 카마도 부분 및 그 주변 공간은 주로 취사 등에 관련된 공간이며 그 옆에 부속된 공간은 취사공간과 연계된 식기류 등을 보관하는데 사용된 공간으로 추정된다. 출입구 공간은 일반적으로 카마도나 화로의 반대편에 설치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고 있으나 북서풍을 피하기 위해 화로나 카마도와 직각으로 설치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16]. 침상 공간은 그동안의 원시주거나 수혈주거 내부 공간 구성을 연구한 앞의 선행 연구 결과 등과 마찬가지로, 카마도나 화로, 저장혈 및 출입구 등을 제외한 건물 내부의 주주와 벽측에 둘러싸인 공간으로 설정되고 있다. 이 공간은 일반적으로 토기 등의 발굴 예가 거의 없고 침대 형상의 유구가 발견되기도 하는 L자형 공간이며 이 가운데 작업용 도구가 발굴되는 지역을 제외한 공간을 침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발굴 유물의 경우 토기류는 주로 카마도와 저장혈 주변에 다수 분포하고 있으며 식기류는 출입구에 인접한 저장 공간 등에서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또한 공용 공간 전면부와 입구의 반대편 공간인 침상 부분 주변에서 제사용 기구와 석봉 등이 발견되고 있으며 봉 모양의 자갈(棒状礫) 등 작업용 도구의 유물은 입구 주변 저장 공간과 작업공간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16]. 따라서 조리 및 보관 공간과 출입구 공간 및 물품 보관 공간 등이 공용공간과 함께 활동 공간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기타 공간이 휴식이나 취침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이 같은 공간 구분이나 분절은 화로나 카마도, 저장혈 및 출입구 등의 위치 관계가 수혈주거 내의 공간 분할에 깊게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의 사실을 참고하면, 보존공원 제13호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도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조리 및 식기 보관 공간과 화로와 직각으로 형성된 출입구 및 그 좌측 공간이 저장혈이나 보관 장소, 출입구 우측이 작업 공간 그리고 그 나머지 L자 공간이 침상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보존공원 제13호 수혈주거의 옥내 고상부는 벽을 따라 4면에 걸쳐 형성되고 있으나 이 가운데 2면이 침상으로 사용되고 나머지 공간은 저장이나 보관 및 작업공간으로 구성되는 유형(4E-2B/1W_1S)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분 시대는 카마도의 도입 등으로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활용이 변화한 시기이고 또한 조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수혈주거가 거의 쇠퇴기를 맞는 최종 단계임을 고려할 경우, 고분 시대 이후가 되면서 침상공간이 벽면의 한쪽이나 두 쪽에 한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미야모토 나가지로의 연구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2], 2면 침상 유형이 옥내 고상부의 최종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4. 결론
이상에서 옥내고상부를 지닌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분절 유형을 파악하기 위하여 옥내 고상부의 용도 가운데 필수적인 침상 부분의 분포 및 개수를 중심으로 3면 침상형 및 2면 침상형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은 일반적으로 수혈주거의 중앙부나 벽측에 설치되는 화로를 중심으로 식사 준비나 조리 등 활동적 생활 공간인 도마(土間)가 형성되며 이 부분을 제외한 주주와 주주 사이 혹은 주주와 벽체 사이의 공간은 취침이나 휴식 등 비활동적 공간으로 사용하게 된다. 옥내고상부는 도마 부분을 제외한 내부 공간 벽체와 기둥 사이에 설치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리나 생활 등을 위한 활동적 공간과 휴식이나 취침 혹은 물품 보관 등과 같은 비활동 공간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도마 부분과 약 5~20cm 정도의 단차를 두어 이단식(二段式)으로 설치되는 옥내 고상부는 주로 침대나 수납시설 혹은 제단 등의 의례 공간 등의 용도로 사용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이론적으로는 수혈주거 4면에 설치 가능하지만, 취침나 휴식이 수혈 주거 내부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출입구 부분은 일반적으로는 침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할 경우 수혈주거의 내부공간 구성을 3면 침상형과 2면 침상형 등으로 구분 가능하다.
이 가운데 3면 침상형은 옥내고상부의 3면을 침상으로 사용하는 유형으로, 침상을 최대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음식과 취침 등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원시시대 초기의 중 소규모 수혈주거 내부 공간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출입구에 대면한 가장 안 쪽 옥내 고상부가 공간의 위계가 높으며 좌 우측 옥내 고상부는 성별에 따른 공간 분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조몬 시대 중기 이후 종교적 의례 행위가 주거 내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출입구 맞은 편에 의례 공간이 설치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침상을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장혈이나 우메가메(埋甕) 및 복식로 등의 공간이 수혈주거 내부에 추가됨에 따라 출입구 부분의 옥내 고상부는 저장용 공간이나 작업 공간 등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2면 침상형은 옥내 고상부 가운데 좌우 부분이나 2개의 측면 공간을 침상 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은 종교 의례용 공간이나 출입구 부분 및 이에 부속되는 수납 공간이나 혹은 작업 공간 등으로 사용하는 유형으로, 홋카이도의 오호츠크 문화주거와 같이 골총 등의 종교적 의례가 극단적으로 강조되는 경우나 혹은 옥내 작업 및 저장 기능이 확대된 원시시대 후기에 자주 나타나는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수혈주거의 최종기인 고분 시대에는 거의 옥내 고상부의 2면만을 침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2면 침상형은 침상은 물론 종교적 의례나 저장 및 옥내 작업 등을 위한 공간이 모두 나타나는 전형적인 수혈주거 내부 공간 분절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원시시대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을 활동 공간인 도마 부분과 비활동 공간을 구분하는 요소로서 옥내고상부에 착목하여 침상 개수와 분포를 중심으로 수혈주거 내부공간 구성의 분절 유형 및 그 특징을 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옥내고상부가 조몬 시대 후기나 야요이 시대 이후 주로 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원시 수혈주거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기준으로서는 무리가 있을 수 있으며 옥내 고상부를 지닌 발굴 유적의 수가 적고 그 형태나 용도 등도 특정되지 않은 사례가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옥내 고상부의 각 가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본 연구에서 행한 유형 분류 결과가 주관적일 수 있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로를 중심으로 하는 도마(土間) 부분과 취침이나 종교 생활 및 가내 작업 등이 이루어지던 주주 및 벽 사이의 공간으로 이루어지는 수혈 주거의 내부공간 구성은 수혈주거가 존속했던 구석기 시대 말기부터 고분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옥내고상부를 도마 부분과 구분하는 용도로 파악하고 이 부분의 용도를 주로 침상으로 설정하여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을 살펴보는 연구는 수혈주거 내부 공간 분절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같은 수혈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은 이후 일본 전통 민가나 주거의 내부 공간 구성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향후 주거 내부 공간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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