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 신석기 유적 주거지 공간 특성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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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Amsa-dong prehistoric site located in Seoul in the central inland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is known as the first site to be discovered among many Neolithic relics around the Hangang River.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nfirm the shape and size of each part of the Neolithic dwelling by providing the clearest possible numerical values for the uncertain parts of the Neolithic ruins in Amsa-dong.
This study is based on the 'Amsa-dong National Museum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Report', an archaeological excavation material published five times from 1994 to 2008 by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as the main basis for a new analysis of the architectural perspective of the Neolithic residential ruins in Amsa-dong. to try as a method of research.
In this paper, the shape, area characteristics, axial direction, transfusion depth, column arrangement, and field characteristics of the Neolithic residential space in Amsa-dong were reviewed. Through this, detailed forms of Neolithic dwelling spaces in Amsa-dong, which were only partially described in architectural documents, and quantified concrete analysis data were derived.
Keywords:
Neolithic Ruins in Amsa-dong, Neolithic Residential Architecture, Prehistoric Dwelling키워드:
암사동 신석기유적, 신석기 주거건축, 선사시대 주거지1. 서론
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한반도 중부내륙지역의 서울시에 위치한 암사동 선사유적은 1925년 대홍수로 신석기시대 문화층이 노출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1968년 이후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한강주변의 여러 신석기 유적 중에서도 최초로 발견된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에서 2013년 사이에 이루어진 4대강 사업과 신도시개발 등의 대규모공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현재는 신석기시대의 수혈주거유적 자료가 급증한 상태이다. 지금의 암사동 선사유적은 신석기 주거유적이 일부 복원되고 암사동 선사주거지 전시관이 건립되어 시민들의 신석기 문화에 대한 교육장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신석기시대 연구를 이어온 고고학 연구자들의 자료를 살펴보면 자료의 발굴에서 시작하여 유구와 유물의 발굴상태대로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형상을 도면화 하고 필요부분들의 수치를 확인하여 기록하고 유적의 해당시기의 자연환경을 유추하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등의 방법으로 연대를 확인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하여 발굴조사서를 발표하게 된다. 이후 이 발굴조사서를 기반으로 후속연구들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해당유적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여러 조사 자료들을 토대로 다수 유적들 간의 상관정도와 문화적 연관성 등을 따져보는 과정을 연구하게 되는 흐름을 보인다. 발굴된 신석기 주거유적은 주로 원형이나 방형 등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이러한 내용들은 각각의 발굴조사서에 수치와 함께 여러 가지 형태로 기록되어있다. 이를 이어서 분석 연구하는 신석기 연구자들은 후속 연구 시에 형태 및 수치들을 입체적 이며 명료하게 분석하기보다 대략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형태와 크기의 상황을 파악하기에 분명치 않은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고학 분야가 기록자체에는 충실하나 인문학적인 학문적 경향으로 인해 이를 물리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에는 관심이 적어서인 것으로 생각된다. 건축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조금 더 명확한 형태분석과 정리된 수치적 자료가 아쉬운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본 연구자는 암사동 신석기유적 자료에 대하여 이러한 모호함을 극복하고 최대한 명료한 수치분석을 통하여 신석기주거지 각 부분의 형태 및 크기를 확인하는 것을 본 연구의 주요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연구의 방법으로는 첫째, 기존의 암사동 신석기 주거의 조사연구과정을 고찰하고 조사발굴의 과정과 발굴조사보고서의 발간현황을 살펴 정리함을 선행하여 고고학 연구자가 아닌 건축연구자로서 부족한 선행 지식을 확보한다. 둘째, 암사동 신석기 주거유적의 입지와 자연환경을 검토한다. 셋째, 암사동 신석기 주거유적의 공간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세부내용들을 분석한다.
본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994년부터 2008년까지 5회에 걸쳐 발간한 ‘암사동 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Ⅰ, Ⅱ,Ⅲ, Ⅳ,Ⅴ’를 중심되는 기초 자료로 삼아 암사동 신석기 주거유적에 대한 건축학적 관점의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는 것을 연구의 범주로 하고자 한다.
2.기존 연구 분석
2.1. 암사동 유적의 발견과 조사과정
서울 암사동 유적은 1925년 대홍수로 인해 유적이 드러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암사동 유적의 발견으로 비로소 신석기시대 대규모 마을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하였다[1].
1964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유적 시굴조사가 고려대와 인류고고학회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후 몇 차례 시굴조사만 이루어지다가 1968년 장충고등학교 야구부 훈련장 조성과정에서 주거지 유구가 드러나면서 대학연합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노지 50여기와 주거지 8기가 확인되었다. 1960년대 암사동 유적의 발굴조사일시나 발굴담당관들에 대하여 과거 논고와 보고서 및 사전들에서 잘못된 기록들이 많았음을 이현태[2]는 지적하고 그의 논문에서 이를 수정 제시하였다.
1971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본격적인 신석기유적 발굴에 착수하였다. 1975년까지의 발굴에서 수혈주거지 유구 및 빗살무늬토기 등의 신석기 유물과 백제시대, 조선시대 유적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1983년과 1984년에는 앞서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한 부분의 주거지들을 교육자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서울대 박물관의 재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98년 교육관 확장을 위한 부지 발굴조사에서 주거지 유적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2005년에는 유적지의 북쪽구역을 체험마을로 개발하기 위해서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시굴조사를, 그리고 2008년에는 경희대학교에서 발굴조사를 각각 실시한 바 있다. 2015년 시설정비를 위한 시굴조사에서 신석기시대와 삼국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2016년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유구확인을 위한 발굴조사가 실행되었다. 그 결과 중심에 불자리가 있는 원형 움집 구조의 신석기시대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주거지들이 나타났다. 암사동 유적에는 지표 아래 크게 3개의 문화층이 존재한다.
제1문화층인 최하층은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며 현재까지 총 30기 가까운 움집터가 조사되었는데 아직 조사되지 않는 지역이 있으므로 이보다 많은 집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2문화층은 청동기시대 유물이 나왔으며, 최상층인 3문화층은 백제시대 유구와 유물이 출토되었다[4].
본 논문에 기록된 Table 1., 2. year of excavation(유적 발굴 연표)는 암사동 선사유적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의 ‘발견과 조사’ 항목부분에 소개된 내용을 일부 옮겨온 것으로 공개된 내용을 참고하기 위하여 필자가 검토하던 중 연표의 2005년과 2008년의 발굴조사 년도가 오기되었음을 발견하여 유적관리자에게 문의하여 2021년 9월 24일에 홈페이지 내용이 수정게시 되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내용이기는 하나 발굴조사의 전체적인 연표를 정리한 공적 기록이 따로 없음을 확인하였고 보존하여야 할 의미 있는 자료임에도 홈페이지에 공개된 기록이 변경이나 소멸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아 현시점에서의 유적 발굴 연표의 기록을 여기에 남기고자 한다.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랜 기간 발굴이 이루어졌으나 그에 대한 발굴조사보고서는 순차적으로 발간되지 않았다. 그간의 발간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1975년의 4차 조사에 대한 내용과 1 · 2 · 3차 조사의 주요유물을 정리하여 1994년 ‘「암사동」, 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 제26책’과 1995년 ‘「암사동」, 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 제26책(Ⅱ)’으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5].
1999년에는 1998년도 신축전시관부지 발굴성과를 정리하여 ‘「암사동Ⅱ」, 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 제30책’을 발간하였다[6]. 2006년에는 1971년도 1차 조사내용을 ‘「암사동Ⅲ」, 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 제35책’[7]으로 발간하였으며, 2007년에는 1973년 2차 조사내용을 정리하여 ‘「암사동Ⅳ」, 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 제36책’을 발간하였다[8]. 2008년에는 1974년 3차 조사 내용을 ‘「암사동Ⅴ」, 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 제37책’으로 발간하였다[9]. 본 논문에는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발간된 발굴조사서에 나타난 신석기 주거유적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 주거 특성을 연구하였다.
3. 대상유적 분석
3.1. 입지와 환경
암사동 유적은 서울시 암사동에 있으며 한강이 굽어 흐르는 곳에 위치한 대규모 신석기 유적이다. 1971~1975년 사이 4차례에 걸쳐 발굴된 유적의 위치는 암사동 153~157번지 일대이다. 유적은 강 건너 북쪽의 광나루와 마주보고 있으며, 고구려 유적인 아차산성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강변에서 약 700~800m정도 떨어져 있으며 강변에 평행하여 동서로 좁고 긴 대지를 이루고 있다. 조사지역은 강변에 평행하게 놓인 좁고 긴 자연제방에 해당한다. 이 대지는 강 쪽과 그 반대편인 내지(內地)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여름철의 집중호우로 인하여 하적토퇴적층(河積土堆積層)이 두꺼운데 이러한 강변의 세사퇴적층(細砂堆積層)인 좁고 긴 대지와 그 양쪽 경사면에 수 만평의 유물포함층이 형성되어 있다.
소상영의 한반도 중서부 지방 신석기 문화 변동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암사동 신석기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의 교정연대 값은 BC2470년~BC5270년에 이르는 것으로 기록되어있다[10].
현재 이 지역은 암사동 선사주거지 전시관이 건립되어 신석기시대 주거지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고 발굴원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역사와 문화의 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3.2. 암사동 주거유적 공간특성
발굴조사보고서의 조사기록상 확인된 주거지는 총 28개 주거지로서 말각방형으로 파악되는 유적은 12개, 방형으로 파악된 유적이 2개로 조사문서의 기록상 구분되나 말각방형과 방형은 실제 유구의 형태상 뚜렷한 구분기준이 없으므로 주거지의 방형과 말각방형을 본 논문에서는 모두 방형으로 통칭하기로 한다. 파괴된 방형 형태가 3개이며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경우가 11개이다. 그리하여 방형은 모두 14개소이다. 원형으로 파악되는 유적은 모두 11개이며 이중 파괴된 원형의 형태가 2개로 나머지 9개는 원형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제대로 형태를 알 수 없는 상태의 유적이 3개로 파악되었다.
연구대상 유적 중 최대면적 주거유적은 1974-3호로서 방형의 형태이며 장축의 길이 6.2m, 단축길이 5.9m, 유적의 최대깊이는 0.7m이며 면적은 36㎡로 확인되었다. 확인된 최소면적 주거유적은 1975-11호로서 말각방형이며 장축은 3.8m, 단축은 3m, 유적 최대깊이는 확인이 불가한 상태이다. 면적은 11.4㎡로 나타났다. 최대면적주거와 최소면적 주거는 3.16배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적이 확인된 주거지의 평균면적은 22.5㎡이다.
장축방향을 확인하여 본 바 파악된 장축방향은 (동북-서남)방향이 1개, (남-북)방향이 1개, (동남-서북)방향이 2개, (동-서)방향이 2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로서 (동남-서북)방향과 (동-서)방향의 방향이 다수인 것으로 보아 주된 장축방향임을 알 수 있다.
원형과 방형으로 나누어 구분해 보면 원형은 파악된 1974-7,10호의 2개 주거지 모두에서 장축방향이 (동-서)방향이며, 방형은 1974-5,11호에서 나타난 (동남-서북)방향이 다수 주거지로 나타나 주된 장축방향으로 파악되었다.
조사된 주거지의 깊이는 수혈주거 내의 깊은 부분을 측정한 것으로서 주거지들 중의 최대 깊이는 1.2m(1975-6호, 원형)이며 최소 깊이는 0.25m(1971-3호, 방형)이다.
중간 깊이는 0.75m((1.2m+0.25m)/2=0.75m)이며, 평균깊이는 0.585m이다.
3.3. 기둥(Column) 특성
발견된 주거지별 기둥구멍 개수를 살펴보면 4주식 11개소, 무주식 7개소, 7주식 3개소, 5주식 2개소, 3주식 2개소, 1주식 1개소, 8주식 1개소, 2주식 1개소로 확인된다.
기둥 배치구성으로서 가장 보편적인 형식은 4개의 주기둥이 있는 4주식 형태이며 보조기둥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11개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형식이다. 기둥이 발견되지 않은 무주식 주거지가 7개소로 나타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기둥 없는 주거지의 형태는 거의 연구된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기둥 없이 형성된 주거지라면 지붕 없는 주거형태라 볼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7주식, 5주식, 3주식, 1주식, 8주식, 2주식의 여러 가지 기둥형식들이 나타나 다양한 기둥배치의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4주식이 가장 많은 형태의 구조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가장 안정된 기둥배치형식으로 선호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둥구멍의 지름을 살펴보면 기둥구멍의 최소지름은 1971-1호의 7주식에 나타난 0.15m이며, 최대지름은 1975-1호와 1975-9호에 나타난 0.45m이다. 기둥이 많은 다주식의 기둥구멍의 지름은 대체로 작은 편이며 4주식에서 큰 기둥구멍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4주식에서 큰 지름의 기둥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둥을 지지하는 형식은 4가지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첫째, 기둥구멍형으로 기둥구멍 내에 별다른 지지물이 없이 지면에 기둥구멍을 형성하여 기둥을 지지하는 형식이 있다.
둘째, 구멍 내에 돌조각을 넣어두고 그 위에 기둥을 두어 지지하는 형식으로서 1974-2호에서 발견되었다.
셋째, 구멍 내에 토기편을 넣어두고 그 위에 기둥들을 두어 지지하는 형식으로서 1975-2호에서 발견되었다.
넷째, 구멍 내에 돌조각과 토기편이 함께 발견되었다. 그 위에 기둥을 두어 기둥 하부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1975-4호에서 발견되었다.
3.4. 노지(Hearth) 특성
암사동 주거유적에는 3가지 형식의 노지형태가 나타난다. 돌두름식, 구덩이식, 갈돌위 돌두름식이 그것이다.
첫째, 돌두름식은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식으로 21개 주거지가 이에 해당한다. 원형이나 방형의 형태로 노지의 바깥쪽을 둘러 화로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원형노지의 지름은 작게는 0.62m에서 0.76m까지 다양하다. 방형노지는 한 변의 크기가 작게는 0.3m에서 0.96m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둘째, 구덩이식 노지는 2개소가 발견되었다. 1998-1호와 1998-2호로서 상세한 내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셋째, 갈돌위 돌두름식 노지는 1973-집자리 한 곳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된 형식이다. 바닥에 갈돌이 깔려있고 돌두름식의 형태로 노지가 형성되어 있다. 방형형태의 노지이며 너비는 0.5~0.63m, 길이는 0.6~0.75m로 확인되었다.
그 외에는 파괴되고 유실된 노지가 3곳에서 발견되었으며, 1971-3호는 유일하게 노지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아 암사동 주거유적에서는 돌두름식 노지의 형태가 가장 일반적인 형식의 노지형태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4. 종합 분석
앞서의 내용들을 종합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거지의 형태특성을 분석해 보면 총 28개의 주거지중 방형 주거지가 14개, 원형주거지가 11개, 파괴되거나 부정형으로 형태를 알 수 없는 주거지가 3개로 파악되었다. 방형이 원형보다 조금 더 많은 유형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주거지의 면적특성을 분석해보면 최대주거지의 면적은 36㎡, 최소주거지의 면적은 11.4㎡, 모든 주거지들의 평균면적은 22.5㎡이며 최대와 최소주거지의 면적은 3.16배의 차이를 보인다.
셋째, 주거지들의 장축방향은 (동남-서북)방향과 (동-서)방향이 많으며 주거지 형태구분에 따라 살펴보면 방형은 (동남-서북)방향, 원형은 (동-서)방향으로 놓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주거지의 깊이 특성을 보면 최대깊이는 1.2m, 최소깊이는 0.25m, 중간 깊이는 0.75m, 주거지들의 평균깊이는 0.585m임이 파악되었다.
다섯째, 기둥배치형식에 따른 특성을 보면 28개 주거지중 4주식이 11개로 39%인 다수를 차지한다. 다양한 기둥배치 형식이 있으나 4주식 기둥배치가 가장 일번적인 배치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여섯 번째, 기둥구멍 크기에 따른 특성을 보면 최대지름은 0.5m, 최소지름은 0.1m이다. 기둥구멍지름의 중간 값은 0.3m((0.1+0.5)/2=0.3)이다. 기둥구멍의 깊이는 0.1~0.3m이며 깊이의 중간 값은 0.2m((0.1+0.3)/2=0.2)이다.
일곱 번째, 기둥세우기 지지방식을 살펴보면 기둥구멍형, 구멍내 돌조각형, 구멍내 토기편형, 구멍내 돌조각+토기편형의 4가지 형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다수는 기둥구멍형이며 나머지 형식들은 1개소씩 발견되었다.
여덟 번째, 노지의 특성을 보면 돌두름식, 구덩이식, 갈돌위 돌두름식 3가지 형식이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노지는 돌두름식 노지로 확인되었다.
주거지 형태특성에 있어 필자의 인천 운서동 신석기 유적의 연구[11] 및 김재선의 연구내용[12]과 비교하여 보면 평면 형상 면에서 운서동 유적은 원형+방형계, 방형+방형계, 원형, 방형의 네 가지 다소 복잡한 내부공간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암사동 유적에서 보여지는 공간 형식은 내부의 공간 분할요소가 거의 없는 단순한 방형과 원형의 형태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운서동 유적에서는 주거지의 최대면적은 39.42㎡, 최소면적은 9.69㎡, 평균 적은 20.42㎡ 로 확인된 바 있는데, 암사동 유적에서는 최대면적은 36㎡, 최소면적은 11.4㎡, 평균면적은 22.5㎡으로서 최대면적은 운서동 유적이 1.09배 크며, 최소면적은 암사동 유적이 1.17배 크고, 평균면적은 암사동 유적이 1.10배 큰 것을 알 수 있다.
암사동 신석기유적과 인천 운서동 신석기유적의 형상 면에서는 암사동 유적의 공간형태가 단순한 형상을 보이나 내부공간의 사용면적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당시 활동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신석기인의 체구[13]를 생각할 때 활동상에 무리가 없는 주거공간을 확보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청동기시대 장흥신풍유적 주거집단 연구[14]에서 최대주거지 면적 50.2㎡, 평균면적 19.6㎡, 최소면적 9.3㎡를 확인한 바가 있으며 이와 비교하여도 평균면적과 최소면적에 있어서는 근소한 차이를 보여 시간과 공간 및 환경여건의 차이와 상관없이 일정한 범위의 주거공간면적이 선호되어왔음을 확인하였다.
5. 결론
암사동 신석기유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석기유적으로서 신석기유적으로는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유적이다. 신석기 유적 중에서도 주거유적으로는 대규모 유적에 속하며 여전히 발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어 그 전체 규모는 온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본 논문을 통하여 그간 발간된 발굴조사보고서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발굴조사의 역사를 돌아보고 조사기록 중 암사동 신석기유적의 주거유구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보았다. 건축학의 관점에서 볼 때 신석기 주거연구는 관심 분야가 아니며 고고학연구자들의 여러 성과물에 대한 관심도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건축사 측면에서나 주거공간사연구의 측면에서 반드시 짚어보고 나아가야할 중요한 시작점임에 틀림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에서는 암사동 신석기 주거공간의 형태, 면적특성, 축방향, 수혈깊이, 기둥배치, 노지특성 등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하여 건축 관련 문서에 대략적으로만 일부 기술되었던 암사동 신석기 주거공간의 자세한 형태와 수치화된 구체적 분석 자료들을 도출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이 건축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인간이 요구하는 근원적 공간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되기를 바래본다.
더 많은 자료들과 연구하여야할 세부내용들이 남아있으나 이는 다음연구로 이어가고자 한다.
Acknowledgments
이 연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내연구비의 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
This study was supported by the Research Program funded by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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