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아방가르드 건축 드로잉의 탈규범적 특성 : 아키그램, 수퍼스튜디오, 아키줌을 중심으로
ⓒ 2019 KIEAE Journal
Abstract
Robin Evans offered us his insight on the role of architectural drawing, which should free itself from the hegemony of representation. This study consider it as the convention of architectural drawing and, taking cues from his arguments, seeks to uncover different aspects of architectural drawing both negotiating with and opposing to that convention by examining the key drawings of the architectural avant-gardes in the 1960s and 1970s which raised important questions of the convention in every possible way.
Three different yet related avant-garde groups - Archigram, Superstudio, and Archizoom Associati - were chosen for their relevance with architectural drawing. The research begins with overviewing historical formulation of the convention of architectural drawing, followed by theoretical investigation of possibility for drawing to deviate from its established convention. In doing so, key contemporary theoretical arguments are briefly reviewed in relation to one another to position the convention and the post-convention. Then key drawings of the chosen avant-garde groups are to be discussed in detail, focusing on their post-conventional characteristics.
Post-conventional disposition of the architectural drawing includes: deliberate expressive quality against re-presentational one, drawing’s expanded role into both theory and practice of architecture, and finally criticality against both circumstances conditioning architecture and disciplinary formation defining architecture itself. These findings may serve as useful and appropriate tool to further look into the state and ever-evolving role of architectural drawing of the present time.
Keywords:
Architectural Drawing, Architectural Avant-garde, Convention, Post-Convention, Representation키워드:
건축 드로잉, 건축적 아방가르드, 규범, 탈규범, 재현1. 서론
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건축의 실천행위(practice)에서 ‘건축 드로잉(architectural drawing)’은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의도를 물질로 이루어진 건물의 형식으로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건축가의 개념화된 사고를 시각적으로 재현해 구축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도면(drafting)’이라고 축소해 부르는 ‘건축 드로잉’은 재현 대상의 실제 구축을 전제로 하며 ‘착상(conception)-재현(representation)-구축(construction)’의 선형적 틀 안에서만 작동한다. 그것은 정보의 저장소이자 전달 매체이며 구축에 관계된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수단이다[1, 2]. 르네상스(Renaissance) 시기 건축가-시공자의 역할분리는 건축가를 사고의 영역을 다루는 지적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건축 드로잉을 건축가의 독점적 영역으로 만들었다[1]. 이후 500여 년이 넘도록 건축 드로잉은 건축을 다른 분야들과 구분짓는 기율을 규정했다. 기율(discipline)이란 건축의 실천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체계이며 건축의 지식체계를 형성하는 실천적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에서 건축의 영역ㆍ책무를 규정하는 제도인 직능(profession)과 구분되는 보다 광범위한 것이며[3], 따라서 건축 드로잉은 건축 기율의 심장부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투시법ㆍ기하학에 갇혀 있던 건축 드로잉은 20세기에 와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도면’의 잣대로 인식ㆍ해석ㆍ평가가 어려운 경향을 보여주었다. 콜라주, 사진, 추상회화의 형식이 건축 드로잉에 침투했고, 형식을 넘나드는 시각적 이미지들은 오늘날 건축의 실천행위에서 다양하게 이용된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도입은 그 변화의 양상을 증폭시켰다. 건축 드로잉은 다양한 매체 형식으로 나타나며, 더는 건물의 모습을 재현한다고만 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 연구는 건물의 재현이 아니라면 건축 드로잉이 갖는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로빈 에반스(Robin Evans)가 건축 드로잉의 창조적 측면에서 강조했던 ‘재현으로부터의 자유[4]’와 같은 맥락에서, 이 연구는 관습적 건축 드로잉과 본격적으로 형식과 내용을 달리하는 1960-70년대의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의 드로잉에서 재현의 당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축 드로잉의 특성 및 역할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연구의 시대적 범위인 1960-70년대는 수많은 건축적 아방가르드(architectural avant-garde)가 등장한 시기이며, 이들이 보여준 건축 드로잉의 양상은 ‘도면’이 아님이 분명했고 과거와는 다른 형식을 띠고 있었다. 새로운 형식의 시각적 재현방식을 다른 예술 분야에서 빌리거나 투영법의 실험과 매체의 확장을 시도했던 20세기 초반의 입체파(Cubist), 미래파(Futurist), 구성주의(Constructivism) 등이 있었다. 그것들은 광범위한 예술과 문화의 범주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이고, 1960-70년대 건축적 아방가르드처럼 건축에 한정시켜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다루는 건축 드로잉은 주로 전시ㆍ출판을 통해 소개되었고 실제로 짓기 위한 수단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연구에서는 1960-70년대의 아방가르드 경향을 우리가 건축적 아방가르드라고 부를 수 있게 해준 아키그램(Archigram), 수퍼스튜디오(Superstudio), 아키줌(Archizoom Associati)의 건축 드로잉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서로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지만 건축 드로잉을 이용하는 다른 방식들을 보여주었고, 이후 세대의 건축가들에게 끊이지 않고 ‘새로움’의 영감의 원천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모든 작품에 나타나는 특성을 살필 수는 없다. 여기서는 건축적 아방가르드를 현대건축역사의 한 부분으로 확립시키는데 기여한 대표작인 아키그램의 ‘Plug-in City’(1963-1964), ‘Walking City’(1964), 수퍼스튜디오의 ‘Continuous Monument’(1969-1971), 아키줌의 ‘No-Stop City’(1968-1972)를 위주로 살펴볼 것이다.
2장에서는 먼저 건축 드로잉의 규범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그 규범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핀다. 3장에서는 1960-70년대 아방가르드 건축 드로잉의 시대적 배경과 특성을 살펴보고, 아방가르드의 건축 드로잉이 어떤 문제들을 제기하는지를 따져본다. 다음으로 4장에서는 연구대상 아방가드르 건축 드로잉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서 건축 드로잉의 탈규범적인 특성과 그 역할을 살펴본 후, 결론에서 그 내용을 종합한다.
2. 건축 드로잉의 규범과 탈규범의 가능성
2.1. 건축적 실천행위의 영역(register): 드로잉
건축에서 드로잉은 여러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이용된다. 이는 건축 드로잉이 어젠다, 형식, 도구, 기법 등의 측면에서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뜻한다. 실제로 짓는 구축행위를 전제로 한 건축작업은 대게 건축 드로잉을 통한 의사소통에 기반하며, 그 소통의 공통언어는 도형 기하학(descriptive geometry)의 언어(Fig. 1.a)이다. 르네상스 때 탄생한 이 언어는 이전의 드로잉 없는 공예술(craft)에 가까웠던 건축과 이후의 건축을 구분했다. 15세기 중반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는 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우선시했는데, 건축(물)은 이것이 건축가의 머릿속에서 착상(conception)되고, 드로잉으로 표기(notation)되는 것이고, 구축을 담당한 이들은 이를 물질의 형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2]했다. 이로써 건축가는 지성인(intellectual)으로, 건축 드로잉은 기술적 표기법(technical notations)으로 확립되었다.
건축의 작업과정에서 착상된 아이디어와 구축된 결과인 건축물 사이의 간극은 20세기에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조나단 힐(Jonathan Hill)에 따르면 여기에는 건축가를 교육ㆍ훈련하는 과정이 전문화된 직능(profession)으로 체계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된 영향이 크다[5]. 대학의 체제에 건축교육이 자리 잡으면서 알베르티식의 설계-구축의 구분은 더 뚜렷해졌고[6], 건축가에게는 이미지의 생산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지적이며 예술적인 노동을 하는 건축가에게 건물을 짓는 것은 물론이고, 건물을 그리고(draw) 서술(write)하는 일도 중요해졌으며, 다른 분야에서처럼 건축가들은 드로잉과 책을 통해 자신들의 지식과 지위를 확립하고자 했다[7]. 르네상스의 세를리오(Sebastiano Serlio)(Fig. 1.b)와 팔라디오(Andrea Palladio)는 그림과 글을 동시에 전달하는 방식을 만들었고[8], 근대적 사진술과 글을 이용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온갖 종류의 이미지와 선언적 글을 병치하는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각각 근대와 현대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5]. 이 외에도 수많은 건축가가 말(words)과 이미지(images)를 결합하여 작업하는 이면에서 우리는 건축적 아이디어의 탐구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반드시 건물이 아니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2.2. 건축 드로잉 규범(convention)의 형성과 변화
건축 역사에서 건축가의 역할과 관련해 지속하는 개념은 건축이 구축(construction)의 문제를 다루는 시각적 기율(visual discipline)이란 점이다. 이것은 구축의 미적 측면으로 설명될 수 없고, 건축가-드로잉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9].
우리는 고대 이집트의 체계화되고 형식화된 시각언어에서 과학적 지식과 수사적 언어로 정확히 설명될 수 없는 부분들이 단순화된 시각화의 방식을 통해 기술되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시각언어의 탄생 후 중세에는 이미지를 통해 공간의 깊이와 3차원 형태를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지만, 중세 건축 드로잉은 몰딩의 원형(template)을 나타낸 것이 전부였다[10]. 이때까지 건축 드로잉은 1:1 스케일로 현장에서 땅에 그려지는 것이었고, 이것은 아이디어를 사고하는 과정이 아닌 지어질 크기와 형태를 표시하는 것일 뿐이었다(Fig. 2.). 14세기에 이르러 건축 드로잉은 건축가가 사고(think)하고 지시(instruct)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회화에서 투시도법의 이론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건축 드로잉은 건축가가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는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드로잉이 고유 형식과 규범을 형성하고, 건축가의 작업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것은 바로 르네상스 이후이다[1,10].
15세기 선형투시도법(linear perspective)과 평행 투상법(orthographic projection)은 건축가가 독립적 권한을 행사하는 도구로 자리 한다[6]. 공간을 정확히 묘사하는 문제는 개인 역량의 문제였으나, 르네상스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은 이들 원리를 이용해 공간을 정확히 기술(describe)하고, 공간의 형태를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원리에 기반한 기술들은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더욱 정교해지며, 앞서 언급한 건축서들을 통해 건축의 기율로서 제도화된다. 한편 17세기의 엑소노메트리(axonometry)는 건축의 형태와 공간을 정확한 묘사의 차원을 넘어 균질한 공간의 추상적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18세기 평행 투상법에 기반한 건축 드로잉의 규범이 보자르식(Beaux-Arts) 교육체제를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을 때[1], 피라네지(Giovanni Battista Piranesi)는 드로잉을 재현이 아닌 서사의 도구로 이용해 확립된 건축 드로잉의 규범에 도전했다. 불안정하고 부조화스러운 공상적이고 애매한 건축을 만들기 위해 소실점과 시점을 조작한 것은 순수하고 객관적인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규범을 철저한 위반한 것이었다.(Fig. 3.a) 여기서 우리는 건축 드로잉은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는 사유(speculation)의 언어가 될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발데사레 페루찌(Baldassare Peruzzi)가 그린 바티칸의 세인트 피터스 대성당의 허구적 건축 드로잉(Fig. 3.b)은 아마도 투시도법과 평행투상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나타내는 선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구축할 수 없는 공상적 기념비를 완벽한 재현의 규범 안에서 그려낸 불레(Etienne-Louis Boullee)(Fig. 4.a)나 지어질 대상에 내재한 질서를 드러내고자 허구적인 폐허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소온(Sir John Soane)의 비현실적 건축 드로잉(Fig. 4.b)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3. 건축과 재현(representation)의 관계
건축가는 건축의 재현수단이 생산수단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건축 드로잉이 구축된 결과로 완벽히 실현되길 기대한다. 이 경우 평행투상법에 의한 도면은 환원과 추상화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상상의 이미지를 완벽히 보여줄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또한, 그 도면에 담긴 내용이 건축적 사물로 나타날 때의 모습은 쉽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건축 드로잉의 규범과 한계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원리는 바로 ‘재현(representation; 再現)’이다. 건축 드로잉의 매개적 특성[4]의 중심에는 아이디어와 건축물을 재현한다는 개념이 자리한다. 재현은 라틴어 어원인 ‘repraesentatio’에서 나온 것으로 ‘다시(re-) 현전하게 하는 것(praesentatio)’을 의미하며,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상에 대한 부정이 내포되어 있고, 동시에 현상 이면의 실체나 본질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자리 잡고 있다[11]. 다시 드러낸다는 점에서 재현은 원본-재현 사이에 극복될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전제한다.
‘매체-재현’의 관계를 논하는 베아트리즈 콜로미냐(Beatriz Colomina)는 재현을 건물과 재현물과의 관계에서 이해했으며, 재현이 곧 건축이라고 주장했다[12]. 그녀의 주장은 건축물이 단순히 이미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생산하는 장치나 기제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다이아나 아그레스트(Diana Agrest)는 재현이 실천과 이론을 잇는 매개가 벌어지는 장소라고 정의했는데[13], 시각적, 언어적 요소 모두를 일종의 언어로 인식하고 설명하며 매개된 특성에 주목했다. 여기서 재현의 장소, 즉 건축적 실천행위가 벌어지는 영역은 드로잉, 글, 모형, 그리고 건축물이다.
한편 로빈 에반스는 재현을 이해하는 데 말이 시각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 주목해 건축적 실천과 이론 사이에 ‘번역(translation)[4]‘의 개념을 도입했다. 여기에서 재현물은 실재하는 건축물이 아니며, 건축물은 재현이 될 수 없다(Fig. 5). 재현은 근대적 개념이며 건축에서 투시도법의 지배와 신체의 중심성을 의심하는 르네상스 이후의 인식을 보여준다[2,14]. 건축 드로잉 규범의 기반인 르네상스적 인식체계 안에서 건물은 신체 일부 혹은 전체에 비유[14]되므로 아그레스트나 에반스 식의 재현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건축물과 재현의 관계는 완벽히 구분될 수 없지만, 건축물과 매체의 관계 그리고 건축물과 참조대상의 관계로 나누어지는 듯 보인다(Table 1.). 콜로미나, 아그레스트, 에반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건축의 재현에서 중요한 점은 재현된 무언가가 아니라 ‘재현의 방식’이다. 건축물은 그 자체로 드로잉, 사진, 글, 영화, 광고 등과 동일한 관점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매체들은 우리가 건축을 접하는 통로이기도 하며, 건축물 또한 이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재현의 기제이기 때문이다[1,12]. 건축물이 생산되는 방식과 건축물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전파되는 방식은 모두 이러한 재현에 기반을 두고 있다.
2.4. 건축 드로잉 탈규범(post-convention)의 가능성
건축 드로잉의 창조적 역량을 탐구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은 재현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했던 로빈 에반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건축 드로잉을 다루는 입장을 크게 둘로 나눈다. 첫째는 드로잉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대상의 물질적 측면에 중점을 둔 방향이다. 여기에서는 개입, 실체, 촉각, 존재, 직접적 행위나 작용의 문제가 중요하다. 둘째는 건축 드로잉에서 실체가 없는 특성들에 주목하는 방향이다. 여기에는 이탈, 편향, 추상, 매개, 간접적 행위나 작용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4]. 여기서 우리는 주체와 대상의 분리가 드로잉을 실체가 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건축 드로잉이 규범적 재현이 아닌 다른 가능성의 영역을 모색하려면, 드로잉에서 건물로의 변환과정에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에반스식으로 말하면 번역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4]. 건축 드로잉이 구축과 재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드로잉과 건물은 구분되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때 건축 드로잉은 창조적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15].
관습적인 건축 드로잉의 주된 두 가지 역할 - 건축물의 구축과 현실의 재현 –을 논함에 있어 기술의 문제가 개입되면 큰 혼선이 발생한다[16]. 재현을 위한 기술, 즉 투시도법, 비례체계, 기하학 등에 대한 두터운 신뢰는 재현수단을 생산수단으로 바꾸어 생각하게 만든다. 건축 드로잉이 아이디어와 의도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면, 드로잉의 규약과 방식들이 이런 아이디어와 의도를 현실로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바로 이런 혼선에서 비롯된다.
건축 드로잉을 어떤 다른 대상을 위한 것으로 보는 입장과 이같은 도구적 측면을 넘어서는 드로잉의 가치와 역할을 탐색하는 입장은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와 후자는 각각 드로잉의 도구성(instrumentality)과 상상성(imagination)에 대한 것이다[17]. 건축에서 드로잉에 관해 말할 때 흔히 기하학적 규칙을 따른 작도(drafting)에 의한 도면은 도구적 측면을, 건축가가 설계과정의 초기에 자유롭고 느슨한 형식으로 만드는 스케치(freehand sketch)를 상상적 측면에 대응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드로잉과 작도/도면(drafting)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도구성과 상상성은 드로잉을 만드는 작용에 개입하는 문자 그대로의 도구(instrument)나 장치(device)의 여부가 아닌, 드로잉의 작동방식이 만들어내는 차이다.
근대와 현대의 건축을 살펴보면 수많은 공상적 드로잉(visionary drawing)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것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어떤 도구성도 갖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건축의 양상을 바꾸어놓은 경우(Fig. 6.)를 발견할 수 있으며[18,41], 1960-70년대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그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에서 재현과 재현의 도구는 건축 드로잉의 규범이 제시하는 것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또한, 15~19세기에 나타난 일부 건축 드로잉(Fig. 3, 4.)에서 재현이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건축 드로잉 규범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상상의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건축가는 생각을 전개하고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도구와 기술을 만들고 수용해왔으며, 그 변화의 흔적은 건축물뿐만 아니라 폭넓은 건축담론을 통해 드러난다. 지난 20세기 건축에서 재현의 변화가 가히 혁명적이었다는 점은 뒤에서 살펴볼 건축 드로잉의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 1960-70년대의 건축적 아방가르드
3.1. 1960-70년대의 건축의 내ㆍ외부적 상황
1960-70년대는 정치 불안과 사회 동요의 시대였다. 사회ㆍ 경제의 문제는 서구사회를 인플레이션, 실업, 사회적 갈등, 노동쟁의, 파업에 시달리게 했다.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권위에 저항하는 1968년 학생운동, 베트남 전쟁과 반핵화운동이 나타난 20여 년의 격변기는 건축뿐 아니라 현대사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논의의 지점이다[19](Fig. 7.). 건축을 포함한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급진적 사고들이 기존 관습과 실천방식을 거부하고 변화시키려고 했다. 건축에서는 이전 시대 모더니즘 건축이 이상실현에 이르지 못하면서 자기비평의 분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에 해당한다. 모더니즘의 순수한 형태와 이상주의를 추구하던 태도는 임기응변ㆍ과정ㆍ의미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대체되고 있었다[9, 24]. 그러나 건축의 내부적 상황이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모더니즘이 강화되고 확장되는 가운데 변화의 요구가 고조되던 시기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한편 정보통신기술이 건축을 포함한 구축환경에 미칠 영향에 관한 계획안과 연구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기술과 네트워크에 대한 유토피아적 기대가 있었다[20]. 한편 이때는 195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건축에 대한 일련의 재고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다른 때보다 이후 세대, 특히 지금 우리가 작품과 이론의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한 시기[21]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진다(Fig. 7). 이 연구의 시각에서 보면, 1960-70년대는 특히 서구에서 건축담론이 건축물에서 건축적 생산물(architectural production), 그중에서도 건축 드로잉(architectural drawing)으로 옮겨가는 데 있어 의미를 지닌다. 뒤에서 살펴볼 건축적 아방가르드의 드로잉을 통해 건축의 외부적 조건과 관계를 형성했고, 내부적으로 건축의 제제와 경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3.2. 건축적 아방가르드(Architectural Avant-garde)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먼저(avant-) 지킨다(-garde)는 전위(前衛)란 뜻의 군대용어로 러시아 혁명 계급투쟁을 주도한 집단의 구성원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며, 예술에서는 기존 예술개념을 전복시킬 수 있는 급진적ㆍ혁명적 경향이나 운동을 지칭한다[22,23]. 이런 경향은 역사의 연속된 흐름에 단절ㆍ변화가 발생하는 지점에 등장하는데, 20세기 초 다다, 입체파, 표현주의 등 역사적 아방가르드, 그리고 이후의 급진적 성향의 예술 경향을 포함한다.
아방가르드에 관한 이론(Table 2.)을 살펴보면 문화ㆍ역사ㆍ정치ㆍ이념적 맥락에서 차이가 있지만, 아방가르드가 작동하기 위한 공통의 전제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아방가르드는 혁명의 대상, 즉 바꾸어야 할 대상으로서 기율을 규정하는 제도나 기관이 있어야 하며 사회적 여건이 낳은 소외나 충격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방가르드의 개념이 포지올리(Renato Poggioli) 까지는 모더니즘과 사실상 동의어의 개념이었지만, 뷔르거(Peter Bürger)가 아방가르드를 강한 급진성을 드러내는 예술가 집단으로 한정하면서 모더니즘과 구분[24]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건축에서 아방가르드의 논의에 있어서 1960-70년대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건축가와 건물을 포함한 건축적 생산물(architectural production)을 기술하기 위한 용어로 아방가르드가 쓰이기 시작한 때라는 점이다. 1960-70년대의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그보다 앞선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형식과 구조, 즉 형태언어나 건축물 유형의 혁신, 기술적 진보의 추구, 이념적 투쟁의 내면화, 확고부동한 이론적 입장, 지리적 경계를 넘나드는 교류와 협업 등을 자신들의 형식으로 수용한다[25]. 그러나 1960년대부터의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달리 부정, 거부, 단절이 아닌 긍정의 가치를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이는 건축적 아방가르드가 일종의 여과 장치이자 구분장치가 되어감을 의미한다.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대한 재평가와 더불어 건축에서 아방가르드의 개념적 전환을 주도했다. 비판주의적 예술사가 캐롤 던컨(Carol Duncan)의 주장처럼 “예술에서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지속해서 조정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그것이 유용한 개념[26]”일 수 있듯이, 건축에서의 아방가르드도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한정될 수 없다. 건축에서 아방가르드는 건축 기율의 변화를 위한 체계를 제시하는 모델로서 그 유용성을 갖는다. 지각, 기준, 평가라는 직능의 세 가지 차원[27]을 지속적으로 재정의하는데 필요한 것은 변화(transformation)이다.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역학관계의 변화 속에서 건축의 위치와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건축의 내적 변화는 필수적이다. 화려한 이미지나 새로운 건축물의 형태가 아닌 아방가르드의 도구성, 즉 차이와 변화의 원동력으로서 도구가 되고자 했던 것이 건축적 아방가르드이다.
1960-70년대에 대거 등장한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대표적으로 들자면 팀텐(Team X), 메가스트럭처 운동(megastructure), 아키그램(Archigram), 수퍼스튜디오(Superstudio), 아키줌(Archizoom), 국제 상황주의자(Situationist International), 유에프오(UFO), 하우스 루커 컴퍼니(Haus Rucker Co.), 그루포 스트룸(Gruppo Strum) 등이 여기에 속한다[21,22]. 이들은 건축적 생산물의 범주를 건축물로 한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강력한 이미지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나타냈고 동시대의 시각적 코드(visual code)를 수용함으로써 ‘이미지’를 건축담론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Fig. 8., 11., 13.). 건축 드로잉의 규범적 언어가 아닌 예술과 그래픽의 시각적 코드를 통해 건축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미지나 선언문을 도구로 삼아 전시나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추구했다.
이와 같은 1960-70년대의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그들이 거부하려던 대상과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크게 네 가지 경향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Table 3.). 첫째, 지역성, 주민참여, 환경운동 등의 수호자로서의 아방가르드이다. 이들은 기존 재건과 재생을 목표로 하는 기존 도시계획의 무능력함을 타파하려 했다. 둘째, 기술적 유토피아의 신봉자로서의 아방가르드이다. 이들은 대중문화와 결탁해 규범적이고 귀족적인 건축의 현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셋째, 정보통신기술과 컴퓨터 기술의 개척자로서의 아방가르드이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이 건축에 가져올 가능성 자체의 문제에 집중하였다. 넷째, 자율성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이다. 이들은 건축이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는 것에 불만을 품고 진정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건축의 조건을 탐색하고자 했다.
1960년대는 건축에 새로운 코드, 즉 새로운 유형의 패러다임을 도입시켰다. 건축작업의 결과인 건축과 도시의 형태 대신 건축작업을 하는 방식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방가르드의 역할이었다. 유용성과 기능이란 과거의 코드를 뒤로한 채,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건축의 내부적 규칙들을 복잡하게 만들고 기율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작업에 임했다. 아방가르드는 점차 기율적 도구로 자리 잡는다. 건축의 내적인 체계와 규칙들을 건축의 외부 조건들에 견주어 평가하고 구분하는 코드의 체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3.3. 건축적 아방가르드의 드로잉이 제기하는 문제
1960-70년대의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한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자신들의 급진적인 태도와 생각을 통해 인간의 삶, 도시,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원동력으로서 건축의 힘을 회복하고, 앞서 모더니즘 건축 – 역사적 아방가르드로서의 모더니즘 – 의 비전에 도전했다. 이들의 작업은 드로잉, 선언문, 사진, 콜라주 등 건축에서의 관습적 규범을 벗어난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을 단지 모더니즘과 달리하는 또 다른 형식의 발명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건축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회피하는 그림(picture)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적 입장[28]으로만 바라볼 수도 없다.
앞서 살펴본 대로 건축적 아방가르드의 목적은 거부와 단절 자체에 있지 않다. 차이와 변화를 만들 방법을 탐구함으로써 건축을 다시 정의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방가르드의 진정한 목적이다. 이렇게 보면 건축적 아방가르드가 보여준 과거와 차별되는 건축적 생산물(architectural production)의 형식들은 건축의 작업영역(architectural register), 역할(role), 작업방식(method)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 정치적 대립, 기술발전 등이 제기하는 전 지구적 과제들에 당면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 또한 건축적 아방가르드가 마주했던 격변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21]. 그 시대 ‘급진적’ 건축가들의 드로잉, 선언문, 사진, 콜라주와 같은 다양한 시각적 생산물들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건축이 오늘날 세계의 현실에 대응하면서 건축의 내부적 체계, 즉 기율(discipline)을 재구성할 수 있는가이다. 건축에서 기율은 객관적 지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건축을 다른 분야와 구분 짓게 만드는 지식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기율[3]이고 건축가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지적활동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위상[1]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건축 드로잉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례들이 갖는 담론적 상상력[28], 즉 이미지를 통한 건축에 관한 담론의 생성이라는 측면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와 같은 측면에서 1960-70년대의 건축적 아방가르드의 시각적 생산물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이들의 건축 드로잉이 어떤 담론들을 생성하며, 어떻게 건축의 내부적 체계를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4. 1960-70년대의 아방가르드의 건축 드로잉
4.1. 아키그램(Archigram)
아키그램은 워렌 초크(Warren Chalk), 피터 쿡(Peter Cook), 데니스 크롬톤(Dennis Crompton), 데이비드 그린(David Greene), 론 헤론(Ron Herron), 마이클 웹(Michael Webb)으로 구성된 영국의 건축적 아방가르드로 기술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며 일시적ㆍ유동적이며 건축의 도시성, 대중성, 찰나성, 가변성을 강조하는건축을 제안하였다. 이들은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버크민스터 퓔러(Buckminster Fuller)와 같은 20세기 초중반의 급진적 건축가들로부터 사회-건축-기술의 관계를 탐색하는 건축의 계보[29]를 잇고 있다.
아키그램은 다양한 건축적 이미지들로 채워진 잡지인 아키그램 매거진(Fig. 8.)을 통해 전통적인 도시계획 방식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30]. 1961년부터 1974년까지 총 10회(엄밀하게는 9와 1/2호) 발간된 이 잡지는 주제, 예산, 인쇄여건 등에 따라 각 호마다 다른 형식으로 출판되며 발전되어 나갔다. 아키그램이 잡지라는 인쇄 매체만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고, 전시, 영화, 강연 등의 시청각적 매체를 함께 이용했다[29]. 이들이 다양한 매체형식을 활용한 것은 폭넓은 독자와 관객에서 접근하려는 목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문화적 차원에서의 매체형식변화양상을 감지하고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였다.
아키그램이 다룬 주제의 상당 부분은 건축과 사회가 서로를 빚어내기 위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전통적인 건축의 개념을 벗어나는 새로운 형태와 형식이 무엇인지 이며, City Interchange Project(1963), Plug-in City(1964; Fig. 9.), Walking City(1964; Fig. 11.)에서 이 주제들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이 보여준 사고의 전환은 거대한 다목적 기계 혹은 건물로서의 메가스트럭처에서부터 작은 규모의 이동 가능한 건축물에 이르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고, 건축물이 지어져야 한다는 통념을 떨쳐버렸다[31]. Plug-in City의 경우(Fig. 9.) 드로잉의 목적은 거대한 격자구조로 이루어진 메가스트럭처가 실현된 모습이나 고정된 공간적 관계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크레인이 하나의 주거단위를 들어 올려 거대한 구조 프레임에 이미 자리 잡은 주거단위들과 결합하는 새로운 건축적 구축방식이 실현되는 상징적인 순간을 상상하고 예측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이미 팝아트가 미술계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러한 팝 문화는 아키그램의 건축 드로잉의 저변에 깔려있었다. 팝아트와 옵아트의 미학, 콜라주와 몽타주, 눈에 띄는 광고의 전략과 기법, 화려한 그래픽은 건축의 형태언어 대신 선택된 당대의 시각적 코드였다(Fig. 10.). 아키그램은 이러한 코드에 기반한 콜라주 방식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이미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재현적 구상이나 3차원 이미지 형성을 파기하기 위해 실험한 방식이었다[32](Fig. 8.). 콜라주는 소비사회의 이미지들을 자신들이 상상하는 건물에 목적을 부여하거나 재구성하기 위해 익숙한 소비사회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Fig. 11.). 건축적 재현의 수사적 힘(rhetorical power)에 대한 강조는 그들의 생각을 전파하는 데도 중요하지만, 드로잉을 설계작업과 연구 도구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있어서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키그램이 건축 드로잉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은 피터 쿡이 글쓰기보다 드로잉을 통해 생각을 나타내고자 했고, 론 헤론은 공상적인 드로잉을 추구한다고 스스로 밝힌 데서 확인할 수 있다 [9,33]. 레이너 밴험(Reyner Banham)은 아키그램이 크리스토퍼 뤤(Christopher Wren) 이후 가장 훌륭한 건축 드로잉을 만들어냈다고 평가[34]하였는데, 건축 드로잉의 기교나 미학적 특성 자체보다 건축적 상상을 드러내는 방식이 뛰어났음을 말한 것이다. 앞서 건축 드로잉의 규범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보자르식 체제를 통해 건축 드로잉의 도구성이 확립되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아키그램의 드로잉은 그 도구성이 시대의 변화에 대한 요구에 무기력하며, 그것보다 상상의 측면에 집중해 규범에 저항하고 혁신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아키그램의 건축 드로잉은 이미지 자체보다 그것을 통해 건축적 제도와 체계를 변화시키려는 입장을 표명한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들은 건축이 팝아트처럼 소비적이고 대중적인, 그리고 변화하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건축 드로잉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렇게 보면 아키그램의 건축 드로잉이 건축물로 실현되지 않는 개념적 건축(conceptual architecture)을 만드는 데 그쳤다는 평가[29]는 이러한 건축 드로잉의 가능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아키그램의 건축 드로잉은 정보의 전달과 소통이 아닌 드로잉에 내재한 태도를 널리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아키그램 매거진이라는 형식은 그 목적에 매우 적절히 부합한다. 이후 이들의 드로잉은 아키그램 매거진의 지면을 넘어서서, 다양한 건축 저술들을 통해 재생산되며 영향력을 넓혀가 다음에서 다룰 수퍼스튜디오와 아키줌 등의 다른 건축적 아방가르드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4.2. 수퍼스튜디오(Superstudio)
1966년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결성된 수퍼스튜디오는 통상적으로 이탈리아의 급진적 건축으로 분류되곤 하는데, 이들의 작업이 본질적으로 이론적 연구라는 점에서, 당시 이탈리아에서 벌어졌던 다학제적 이론적 논쟁과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35]. 사실 이탈리아의 급진적 건축은 뚜렷한 형식적 기반을 갖는 운동이나 사조가 아니며, 예술사가인 제르마노 셀란트(Germano Celant)가 여러 건축가 집단을 포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일 뿐이다[36].
아돌포 나탈리니(Adolfo Natalini), 크리스티아노 토랄도 디 프란치아(Cristiano Toraldo di Francia), 지안 피에로 프라시넬리(Gian Piero Frassinelli), 로베르토와 알레산드로 마그리스(Roberto & Alessandro Magris), 알레산드로 폴리(Alessandro Poli)로 구성된 수퍼스튜디오는 1978년까지 건축의 이론적 연구에 기반한 활동을 펼쳤고 1982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수퍼스튜디오의 Continuous Monument는 처음에는 일련의 콜라주 형식(Fig. 13.)의 이미지였고, 이후 코믹스트립(comic-strip) 양식의 스토리보드 형식(Fig. 14.)으로 발전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구조 또는 일련의 기하학적 오브제로 구성된 추상적인 사각의 입방체가 특정한 영토에 삽입된 것이 주된 이미지였다. 백색의 표면은 무한 반복되는 격자로 뒤덮여 있고 주변을 반사하거나 투명하게 나타났다. 구조물의 내부를 나타내는 부분은 없었고, 또한 평면, 단면, 입면 형식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투시도의 형식이 주를 이루었다. 스토리보드는 건축에서 다뤄지지 않는 매체형식을 이용해 프로젝트를 정교하게 역사화ㆍ맥락화하려는 시도[36]라고 볼 수 있다.
수퍼스튜디오의 투시도 형식 건축 드로잉은 콜라주를 적극적으로 이용(Fig. 12., 13., 15.)하고 있는데, 실재하는 건물의 재현으로 드로잉이 해석될 가능성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콜라주들은 긍정적인 유토피아의 재현이 아니라 양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건축적 아이디어의 편재성, 격자와 입방체의 시각적 매력, 기계화된 생산방식의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적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37]”라는 닐 스필러(Neil Spiller)의 견해는 이 드로잉들의 목적이 눈에 보이는 사실의 전달에 있지 않음을 잘 말해준다.
Continuous Monument에서 건축 드로잉이 작동하는 방식은 건축적 아이디어를 시각화해 제시하고자 하는 바를 시험하는 규범적인 드로잉의 작동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공간적 아이디어가 발전되어 설득력을 획득하는 설계(design)의 과정과 다르게, 이 프로젝트를 이루는 건축 드로잉은 근대의 도시적 비전과 전후의 기술과 기념비성에 대한 집착을 비판하는 입장을 강조한다. 여기서 콜라주의 역할은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의 제공이 아닌, 건축 프로젝트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36]. 아키그램과 마찬가지로 대중적이거나 익숙한 이미지는 수퍼스튜디오의 콜라주에서도 나타난다. 때로는 배경이 되기도 하고(Fig. 13.), 때로는 전면에 위치하기도 한다(Fig. 12.). 이 사진 이미지들은 그려진 기념비적 건축과 결합될 때, 실재와 허구적 가설의 대비는 부각된다.
수퍼스튜디오의 콜라주에 드러나는 유일한 객관적 정보는 표면 위의 그리드뿐이다(Fig. 15.) 사각형의 블록은 여기서 오직 자기 자신으로만 환원되는 형태를 띤 궁극의 절대적 건축을 의미한다. 수퍼스튜디오가 생산한 이미지들이 던지는 질문은 기념비적 건축으로부터의 질서에 대한 역사적 통념, 그리고 역설적인 자기참조성을 지닌 그리드의 당위성에 관한 것이다.
수퍼스튜디오의 건축 드로잉은 실재하는 도시나 자연환경의 배경에 대중적 이미지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삽입 또는 제거된 단순한 시각적 수단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들의 드로잉이 신선하고 충격적인 이미지 자체의 구축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이 드로잉은 전면적 도시화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시각적 방식으로 예측하는 도구이자 건축적 지식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31]. Continuous Monument에서 투시도법을 따른 규범적 형식의 건축 드로잉이 탈규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기념비적이고 획일적인 근대 도시계획을 비판하기 위해,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을 통해 극단적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바로 건축담론에서 건축 드로잉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4.3. 아키줌(Archizoom)
아키줌(Archizoom)은 안드레아 브란지(Andrea Branzi), 길베르토 코레티(Gilberto Corretti), 파올로 데가넬로(Paolo Deganello), 마시모 모로지(Massimo Morozzi), 다리오 바르토리니(Dario Bartolini), 루시아 바르토리니(Lucia Bartolini)가 수퍼스튜디오와 같은 해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결성한 건축적 아방가르드이다. 집단의 명칭은 ‘AMAZING ARCHITECT/ZOOM!’(Fig. 8.)이란 아키그램 매거진 제4호의 제목에서 유래했다.
아키줌의 작업은 아키그램이 제시한 소비사회의 논리, 그리고 건축과 정치를 분리하려는 욕망에 대한 풍자적 반응이었다. 이들은 ‘반-디자인(anti-design)’ 혹은 이탈리아의 급진적 경향을 이끌며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유동성과 기술에 기반한 도시계획을 탐색하는 제안들을 선보였다. 안드레아 브란지는 “도시는 더는 체계를 ‘재현’하지 않으며, 프로그램화되고 특정한 방향성을 갖지 않는 체계 자체가 된다[38]”고 주장했는데, 이는 부정적 유토피아에서 수평으로 펼쳐진 세계를 규정하는 조건이다.
No-Stop City(Fig. 16., 17.)는 산업사회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도시의 상황에 대한 다소 공격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대도시에 대한 인식은 단일한 건축적 해법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축소되어 있다. 아키줌은 인간의 욕구에 맞춰진 도시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도시와 건축의 규칙이 갖는 본질을 포착하고자 했다[39]. 사용자들에 의해 조정되는 공원과 주거의 위치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측면에서 볼 때, 객관적 규칙에 따른 프로젝트는 과거의 방식과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 건축적 형태의 측면에서 단순한 입방체는 지극히 관습적이며 규범적이다. 조감도의 형식은 제시된 건축의 전체주의적 특징을 과장하는데, 건축의 형식적 구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그들의 입장을 거스르는 듯 보인다. 한편 건축 기율의 근간을 이루는 평면, 단면 형식의 드로잉을 손으로 그리지 않고 타자기라는 기계장치를 이용해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것은 건축 생산방식에 대한 비평적 입장의 표명인 것으로 여겨진다(Fig. 17.).
아키줌의 건축 드로잉에 나타나는 애매함은 실현할 수 있는 건물을 지시하거나 의미하는 것을 회피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특성이다. 또한, 그것은 재현의 방식이 드로잉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일종의 건축적 결정론으로부터 개념적 자유를 획득할 수 없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건축은 질서를 부여하는 궁극의 장치가 되려 하지 않는 이미지의 무능력함을 드러낸다(Fig. 17.).
No-Stop City의 평면과 단면 또한 공간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내재한 도시적 조건 안에서 형태, 구성, 성질 등의 건축적 개념을 문제화한다(Fig. 17.). 건축 담론 내에서 이 드로잉의 의도된 영향력은 바로 이러한 입장을 드러내는 데 있다.
아키줌은 앞서 살펴본 건축적 아방가르드에 비해 추상적인 형식의 건축 드로잉(Fig. 17.)을 이용했고, 때로는 글이 건축 드로잉을 대체하는 경우를 보여주기도 한다(Fig. 16.a). 수퍼스튜디오의 경우에는 건축 드로잉과 글이 동등하게 하나의 프로젝트를 구성한다(Fig. 14.). 아키줌의 경우에 글이 프로젝트에 대한 비유적 설명이기는 하지만, 콜라주 이미지 자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여기서 글은 프로젝트 전체의 서두나 후기에 가까우며, 건축 드로잉을 만들게 된 조건이나 생각의 맥락을 설정한다. 여기서 글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건축 드로잉을 특정한 방식으로 읽히도록 해줌으로써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즉, 건축 드로잉이 단순히 도발적인 제시를 하고 글이 그것에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수퍼스튜디오의 글은 드로잉의 이미지만큼이나 역설적이고 비유적이지만, 아키줌의 글은 이와 달리 소통을 지향하는 특징을 보인다.
5. 결론
이 연구는 당시의 건축 드로잉이 이전 시대와 본격적으로 그 양상을 달리했던 때로 파악했다. 혁명적ㆍ급진적 성향의 건축적 아방가르드는 건축에서 매체와 기술을 관습과 통념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들은 동시대 시각문화의 매체적 특성을 수용해 콜라주 혹은 기계제작방식의 건축 드로잉 형식을 주로 사용했고, 건축 드로잉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방식에 대해 꾸준히 실험하였다. 또한, 뷔르거 이후의 반-모던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모던 건축 이념의 폐해인 인간성의 소외와 환경의 파괴, 모던 건축의 작업방식,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드로잉을 통해 드러냈다. 이들의 건축 드로잉이 역설적인 방식으로 도시의 생명, 인간소외, 환경과 반응하는 방식 등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세 건축가 집단이 생태학적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짐작하게 만든다.
한편 이들은 재현의 대상, 추상화의 수준, 글-드로잉의 이용방식 등의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아키그램은 기술낙관론적 미래를 그렸지만 다른 두 집단은 현재에 집중했고, 전자는 동시대 팝아트적 경향에 충실하면서도 설명적인 경향을 보여주었지만, 후자는 과장, 축소, 삭제의 방식으로 추상화된 경향을 나타냈다. 또한, 아키그램과 수퍼스튜디오의 드로잉은 글과 그림이 설명이자 선언문으로서 같은 역할을 하지만, 아키줌의 경우에는 글이 드로잉의 맥락을 구축하는 데 이용된다. 세 건축적 아방가르드의 드로잉을 통해 살펴본 건축 드로잉의 탈규범적 역할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키그램, 수퍼스튜디오, 아키줌의 건축 드로잉은 정보 전달보다 아이디어ㆍ의도의 표현에 중점을 둔다. 아이디어를 구축된 건물로 재현하던 관습적 건축 드로잉의 규범에서 정보의 가감 없는 전달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건축적 아방가르드의 드로잉은 매체를 통한 아이디어의 재현을 강조하는 탈규범적 경향을 보여준다. 정확한 지시ㆍ설명을 위한 세부사항은 축소 또는 삭제되고 무언가를 연상시키고 암시하는 시각적 코드들이 이용된다.
둘째, 건축적 아방가르드의 드로잉은 설계(design)는 물론이고 이론(theory)의 차원에서 중요한 도구로 기능한다. 이들의 건축 드로잉은 아이디어를 미래의 세계에 투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적절히 시각화하여 평가, 예측, 판단 등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단지 볼 수 있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주어진 여러 문제를 특정한 입장에서 다룰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건축에서 건축가의 지적 소양을 보여준 것은 주로 글이었지만, 건축적 아방가르드의 드로잉은 글이 아닌 시각적 방식으로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이들의 드로잉들은 건축의 내ㆍ외부적 조건이나 체계에 대해 비평하는 역할을 갖는다. 시각매체는 현대의 문화 생산ㆍ보급ㆍ유지에 있어서 필수적이며, 사회ㆍ문화ㆍ정치적 비평의 도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건축에서도 대부분의 건축적 지식이 건축 드로잉을 통해 생성ㆍ배포ㆍ지속한다는 점에서 건축의 시각매체인 드로잉이 유사한 잠재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아키그램, 수퍼스튜디오, 아키줌은 가상의 미래를 재현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후 건축의 기념비성과 폭력성, 사회의 획일성 등의 건축 외부적 조건을 비평했고, 시각매체의 제작과 배포방식을 혁신함으로써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며 긍정적 미래의 투사된 모습을 그려야 하는 건축 드로잉의 규범체계를 비판한 것이다.
오늘날 포스트디지털(post-digital) 시대의 건축 드로잉(Fig. 18.)은 컴퓨터 기술의 도입 이후 보편화된 렌더링(rendering)으로 대표되는 시각적 사실주의 경향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듯 보인다. 건축은 이제 물리적 구축을 위한 기술, 고도의 정확성, 정보의 기술과 전달방식, 다매체적 시각재현방식 등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온갖 기술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이처럼 단순화되고, 회화적이며, 의미상으로 애매한 건축 드로잉은 과연 어떤 목적과 의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는 앞서 살펴본 1960-70년대 아방가르드 건축 드로잉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 논문은 1960-70년대라는 특정 시기의 독특한 건축 드로잉에 나타난 탈규범적 특징을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하지만 이 사례들이 보여준 탈규범적 건축 드로잉의 특성이 건축 기율 전체를 변화시켰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연구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건축 드로잉이 건축 기율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본다면 그 영향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건축 드로잉이 규범과 교섭하며 탈규범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양상과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키그램, 수퍼스튜디오, 아키줌 이후 세대의 사례들까지 함께 비교해 분석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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