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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search Article ]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The Korea Institute of Ecological Architecture and Environment - Vol. 20, No. 4, pp. 47-52
Abbreviation: J. Korea Inst. Ecol. Archit. And Environ.
ISSN: 2288-968X (Print) 2288-9698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1 Aug 2020
Received 24 Jul 2020 Revised 11 Aug 2020 Accepted 14 Aug 2020
DOI: https://doi.org/10.12813/kieae.2020.20.4.047

현대건축에서 탈원근법적 바닥면 계획의 변천사 연구 : 자크 라캉의 시각이론에 입각한 접근
김태철*

A Study on the De-Perspectivization of Floor Slab in Contemporary Architecture : Based on the Theory of Anamorphosis by Jacques Lacan
Tae Cheol Kim*
*Professor, Department of Architecture, Dong-A University, South Korea (valentin@dau.ac.kr)

ⓒ 2020. KIEAE all rights reserved.

Abstract
Purpose:

Modernist architecture, based on the geometrical perspective, has treated the floor slab as the flat and simple ground supporting the figure created in a variety of forms. However, contemporary architecture tries to change the persistent roll of floor slab: new experimental plans have focused on this architectural element as the last object of changes. As a result, unprecedented constructions with new shapes of floor slab appeared. They created panoramic space or anamorphic space. This study would focus on a few buildings with de-perspectivized forms of floor-slab.

Method:

This study depends on the Lacanian visual theory and his concept of anamorphosis in order to categorize the architectural experiments of de-perspectivized floor slab. Clarifying the difference of classical geometry and projective geometry and its consequence of spatial construction, this study would analyze Educatorium, Yokohama International Terminal, Guggenheim New York and Rolex Learning Center.

Result:

The plan for Rolex Learning Center intends to make the floor slab curved and bent so that it takes the role of figure, not the one of ground. This exemplary case suggests that future architecture needs to consider the de-perspectivized spatial structure counting on the prospective geometry.


Keywords: Anamorphosis, Jacques Lacan, panoramic space, anamorphic space
키워드: 왜상, 자크 라캉, 파노라마적 공간, 왜상적 공간

1. 서론: 왜 바닥면이 문제인가?

건축의 역사는 건축적 요구에 맞게 기술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건축공간과 구조를 만들면서 이어져왔다. 현대 건축의 모태가 된 모더니즘 건축은 19세기 후반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방식에 의해 벽과 지붕이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 시기의 건축은 조적조의 벽이 평면과 입면에서 위치와 길이가 고정되는 구조로서 건축계획에 제약조건이 많았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이러한 기술적 제약조건을 탈피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정리한 ‘근대 건축 5원칙’은 이를 잘 드러낸다. 특히 ‘자유로운 파사드’와 ‘자유로운 평면’의 원칙은 기둥과 보로 구성된 라멘 구조에 기초하여 벽을 구조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술적 제약으로 인하여 건축물 구성의 기본 방향을 규정하고 강제하지 않게 됨에 따라 모더니즘 이후의 건축가는 기존의 건축과는 차별화되는 방법론에 대한 내적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방법론은 이제 외적 요구인 기술사항에 부응하기보다는 건축공간에 대한 건축가 자신의 고유한 주장과 새로운 해석인 내적 요구를 더욱 중시하는 것이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서 건축가들은 건축공간의 기초 요소인 벽과 지붕 등을 대상으로 다양하고도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시도해왔다. 현대건축은 바로 그러한 시도와 성과가 축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그러한 성과들 중에서도 특히 바닥에 대한 건축적 접근에 주목한다. 그간 벽과 지붕이라는 건축적 요소에 대한 실험적 시도는 활발했던 데 비해 바닥을 대상으로 한 시도는 매우 희소했다. 바닥은 사람의 몸이 항상 곧바로 닿는 부분으로서 사용상 불편해진다면 그 불편함을 뛰어넘어 건축 논리를 정당화할 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은 그만큼 공간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크기에 실험적인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예로 경사진 바닥을 공간에 적용해 새로운 조형의 건축물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폴딩 건축(folding architecture)이 있다. 하지만 경사진 바닥의 적용은 사용상의 불편함 때문에 공간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다보니 수직 동선이나 옥상 공간에 국한시켜 소극적으로만 적용되었다. 자연히 그 파급력은 모더니즘 건축의 기본 틀을 뛰어넘을 정도가 되지는 못했다.

바닥은 벽과 지붕과 함께 건축 공간의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닥을 다루는 모더니즘 건축의 합리적 사고가 동시대의 건축에서 어떻게 분기해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과제이다. 본 연구에서는 바닥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 시도들을 정리함으로써 모더니즘 건축을 탈피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방법론을 타진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서 시작하여 바닥면을 다루는 폴딩 건축의 에듀카토리엄(Educatorium)과 요코하마 국제터미널(Yokohama International Terminal)을 거쳐 프랭크 로이드라이트의 구겐하임 뉴욕(Guggenheim New York)과 SANAA의 롤렉스러닝센터(Rolex Learning Center)에 이르는 사례들에 주목한다. 여기서 구겐하임 뉴욕과 롤렉스러닝센터의 차별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자크 라캉의 시각이론, 그중에서도 왜상론을 건축작품 분석에 적용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바닥면의 계획이 기존의 기하광학적 원근법과는 다른 왜상을 구현한다는 것의 의미를 정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할 것이다.


2. 분석 방법론: 라캉의 시각이론

흔히 정신분석학이라 하면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프로이트의 예술론은 병리적 전기론(Pathographie)에 입각한 것이다. 그는 작가의 유년 시절이라든가 개인적인 성격이 작품을 해석할 완전한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이를테면 <모나리자>와 <마리아와 성 안나>는 사생아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아기 경험을 압축한 것이라는 식이다[1]. 하지만 라캉은 예술작품을 작가의 심리적 현실의 표현으로만 보는 데 머물지 않고 보편적 미학 이론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예술과 예술작품의 본질을 무의식적 차원과 연결시켜 해명한다는 점에서 그의 예술론은 여전히 정신분석적이었지만, 예술과 예술작품의 존재를 철학적 존재론과 인식론, 윤리학의 맥락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2].

라캉의 시각이론은 주로 미술, 특히 회화에 대한 설명을 통해 전개되었다[3]. 본 연구는 그중에서도 왜상(anamorphosis) 이론에 초점을 맞추자 한다. 왜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똑바른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오로지 삐딱하게 흘겨보아야만 제대로 된 형상이 보이는 일그러진 이미지를 가리킨다. 왜상은 원근법적 이미지의 안티테제이다. 실제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활용해서 단안 원근법적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발전했던 시대에 그 방식을 거꾸로 적용해서 원근법적 그림을 전위(transposition)시킨 왜상화를 그리는 것도 함께 유행했었다. 일그러진 이미지의 중앙에 원통형 반사판을 놓아두고 보면 그 왜상의 원근법적 그림이 반사판에 비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회화사에서 왜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아래쪽에 나오는, 납작하게 눌린 듯 보이는 해골처럼 정상적인 시각장 속에 이질적으로 덧붙여져 있기도 하고 뭉크의 <절규>처럼 온통 왜상 자체만으로 프레임이 꽉 채워지기도 한다. 혹은 제임스 엔소르의 <스튜디오의 해골>에서처럼 프레임 속의 프레임을 만드는 액자 구성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라캉의 왜상을 문제 삼은 이유는 왜상이 “시각의 객관적(이라고 가정된)장과 응시의 이율배반적 관계를 가시화”[4]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정신분석학은 의식과 무의식의 분열을 통해 주체를 해명한다. 같은 논리를 라캉은 주체의 시각성에 적용하고 시선(look)과 응시(gaze)의 분열을 개념화한다. 이 두 개의 범주를 라캉의 삼항조(triad) 이론으로 다시 설명하자면, 시선은 상징계와 함께, 즉 상징들에 의해 구조화되는 언어, 법과 금지, 담화체계,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의 체계와 함께 계열화되는 개념이고, 응시는 실재계(혹은 실재)와 함께, 즉 상징계 자체에 내속된 분열 혹은 틈새와 함께 계열화되는 개념이다. 시각적 장 안에서 이 분열은 욕망의 주체에 의해 삭제되는 암점과 같은 것, 무의식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징계는 대타자가 자신을 욕망하게끔 욕망하는 주체가 상상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시각의 장(visual field) 역시 전시적(omnivoyant) 대타자의 시선에 따라 자신의 시선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주체가 상상적으로 구성한 환영이다. 그래서 라캉은 시선의 주체를 눈먼 주체라고 주장하면서 “시선에 대한 응시의 승리”[5]를 역설한다. 이는 주체성의 핵심을 무의식의 차원에서 구하는 정신분석가로서는 당연한 주장이라 하겠다.

실재는 꿈이나 회상, 농담이나 말실수의 형태로 불시에 상징계에 침입하며, 상징계의 통합성을 훼손하는 얼룩이나 오점으로 나타난다. 그 얼룩이나 오점이 바로 왜상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왜상이 반드시 일그러진 형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원근법적 시각 모델을 균열시키면서 그 공간을 탈구시키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왜상의 계열이라 말할 수 있다.

라캉은 시선과 응시, 원근법적 시각장과 왜상 간의 균열을 설명하기 위해 고전(유클리드) 기하학과 사영(비유클리드; projection) 기하학의 차이를 논의로 끌고 들어온다. 전자는 시각 장을 평평한 것으로 간주하기에 대상과 그 재현물 간에는 1:1 관계가 성립한다. 그러므로 고전 기하학에 입각한 원근법적 공간은 정확히 좌표화될 수 있는 소실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혹은 폐쇄된다). 반면 후자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대상과 그 재현물을 1:1로 대응시킬 수 없다는 논리에 입각해 있다. 따라서 시각 장을 보는 관점은 소실점에 맺히며 폐쇄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점을 통해 무한히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게 된다. 라캉은 마치 주체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듯 시각 장 또한 소실점과 무한점의 최소차이로 인해 분열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왜상은 바로 그 분열을 입증하며 출현하는 기표, 즉 기하광학적 차원 안에서 시선의 교환을 뒤틀며 원근법을 ‘거꾸로’ 사용하는 이미지 기표라고 할 수 있다.

라캉의 시각 이론은 현대건축을 분석하는 데 영감을 준다. 특히 그의 왜상 이론은 아직까지 국내 건축비평에 도입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건축은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기하광학적 원근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본 연구의 관심사인 바닥면의 계획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건축공간 계획에서 가장 완고하게 기하광학적 원근법의 원칙을 지켜온 것이 바로 바닥면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바닥면까지도 원근법적 관점에서 이탈해서 사영기하학의 관점을 채택하게 되었는지 그 변천사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기존의 모더니즘 건축이 바닥이 평평한 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각형의 형태로서 기하광학적 원근법과 맺고 있는 관계를 확인하고, 과도기적 실천을 거쳐 사영기하학과 왜상의 관점에서 경사진 바닥면을 계획하게 되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3. 고전 기하학적 접근: 에듀카토리엄, 요코하마 국제터미널의 파노라마적 공간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은 삶을 담는 기계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기계’라는 표현은 모더니즘 건축이 기능성과 효율성을 기반으로 함을 함축한다. 기능성을 위해 건축가는 공간을 필요한 성격에 따라 구획하며 구획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자 동선을 계획한다. 이때 동선은 선형적으로 진행하며, 그 과정에서 공간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원근법 투시도가 이용된다.

투시도는 기하광학적 원근법의 건축적 실현이다. 코르뷔지에 또한 작품을 설명할 때 2차원을 3차원으로 확인시켜주기 위해 실내 투시도를 즐겨 사용했다[6]. 모더니즘 건축에서 투시도 작업이 쉽게 가능한 것은 직각 사각형의 조형 덕분이다. 사각형은 평면상 X축과 Y축으로 되어있고 서로 직각이거나 평행하다. 선들을 이용하여 연결, 단절, 반복하는 등의 변화가 규칙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공간 형성을 논리화하기도 쉽다. 모더니즘 건축은 이러한 조형을 인간이 살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한 조형이라고 보았다.

기하광학적 원근법은 선형의 구조로 구상된 장면이 수렴되는 가상의 이득점을 독점할 최후의 수혜자, 즉 대상을 시공간적으로 온전히 장악하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개인 주체를 가정한다. 다시 말해 원근법적 공간화의 원칙은 근대의 개인주의적 주체성에 입각해 발전한 것이다. 라캉의 개념대로라면 시선의 주체라 불러야 할 그 주체의 위치는 물론 상상된 것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원근법적 공간 안에서 그러한 위치는 그 공간의 모든 사용자에게 부여된다.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그 공간을 계획한 건축가야말로 그 공간의 주체/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선택하고 통제하는 존재이다. 심지어 건축가는 그 공간 사용자의 행위 방식까지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유도한다.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두 개의 소실점을 사용하는 2점 투시도를 주로 사용한다. X, Y축은 두 개의 소실점으로 형성되는 선으로서 공간의 형태를 표현하기 위한 ‘그림(figure)’이다. 반면 높이에 해당하는 Z축은 소실점이 없기에 항상 직각의 수직선으로 고정되어 그림의 위치를 확인해주고 공간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투시도에서 소실점 없는 수직선이 항상 직각이기 위해서는 바닥면이 수평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평 바닥은 선의 표현이 없는 백지상태로서 투시도에서는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표현이 없이 비워진 백지는 곧 그림을 위한 배경(ground) 역할을 담당한다. 이것은 모더니즘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축작업에서 공간의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다. 투시도에서 공간 형태의 ‘그림’은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진 벽으로 그려지며 바닥은 그림을 위한 ‘배경’으로 기능한다.

배경으로서 바닥의 역할은 기하광학적 원근법에 따르는 투시도에서 대지로도 연장된다. 투시도 상에서 대지는 평평하며 건축물이 대지와 만나는 선도 간략하게 수평선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실제로 지구는 둥근 형태이고 대지는 평평하지 않다. 모더니즘 건축은 그동안 이 점을 묵과해왔다. 이제 새로운 건축의 출발점은 바닥과 대지가 평평하다는 기본적인 가정을 의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영기하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의 출발점이 된다.

물론 모더니즘 건축에서도 공간 전개에 변화를 주기 위한 파격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닥면과 관련해서도 바닥을 벽과 지붕을 떠받치는 수평적인 요소로서만 사용하지 않고 램프를 이용하여 수직적인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벽과 지붕이 아닌 바닥을 기존 방식과 달리 파격적인 건축 요소로서 이용할 가능성에 주목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들이 제안한 것이 바로 폴딩 건축(folding architecture)이다. 이것은 폴딩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바닥면을 접거나 휘게끔 변형시켜 형성된 공간을 이용하자는 계획으로서 그동안 벽과 지붕을 위주로 시도한 것과는 차별적인 설계방법이다. 폴딩 건축에서는 바닥을 수직 동선 용도로 동시에 적용하게 되면 모든 층의 바닥이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층의 경계 없이 모든 공간이 이어져서 “파노라마적 공간 인식”[7]이 이루어지게 된다.


Fig. 1. 
Educatorium


Fig. 2. 
Yokohama International Port Terminal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에듀카토리엄과 FOA의 요코하마 국제터미널은 실제로 지어진 폴딩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에듀카토리엄은 폴딩 건축 초기의 사례로서 접힌 바닥면의 옆 부분을 외부에 노출하여 ‘폴딩’이라는 건축적 행위를 조형의 요소로서 표현한 건축물이다. 사각형의 건축물에서 폴딩 면을 부각시킨 것은 모더니즘 건축이 추구한 규칙인 효율성 및 기능성과 대비되는 파격적 건축물을 만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폴딩은 경사진 바닥면의 단면을 그대로 활용하는 계단식 강의실과 강의실로 접근하는 데 필요한 램프라는 한정된 공간에 활용되었을 뿐, 건축물의 전반적인 구성에서는 평평한 바닥이 채택되었다. 결국 경사진 바닥은 램프를 확대한 차원이며 적용 범위도 부분적이어서 외형의 파격에 비해 공간적으로는 소극적 적용으로 끝났다. 이는 르 코르뷔지에가 램프를 규칙성과 대비시키는 파격 요소로 이용하는 모더니즘 건축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코하마 국제터미널의 경우는 폴딩의 개념을 부각시켜 적극적으로 경사진 바닥을 건축물 전반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경사진 바닥면은 터미널의 특성상 동선 계획에서 관문을 통과할 때 성격에 따라 구분하기 위한 입체적 연결체계로서 적용되었다. 전체적으로는 경사진 면이 교차되며 바닥면의 굴곡을 강조하고 서로의 경사면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엉켜 있는 조형이 특이하다. 이것은 동일 성격의 동선은 서로 연결하고 성격이 다른 동선들은 서로 교차되지 않도록 하고자 여러 경사면의 위치에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배치로 인해 만들어진 조형이다. 따라서 경사면의 배치는 램프로서의 사용을 고려한 것으로서 에듀카토리엄과 같은 취지라고도 볼 수 있다. 외형상 눈길을 끄는 뫼비우스의 띠의 형태는 옥상 공간의 용도인 동시에 사용자가 바다에 면한 피어로 산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경사진 바닥을 지면에서 지붕까지 이어지게 하려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대지에서 출발한 경사진 면이 지붕면까지를 하나의 면으로 연결함으로써 폴딩의 조형성을 갖게 된 것은 분명 참신하고 의미 있는 아이디어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형성은 인공대지의 조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르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 5원칙’ 중의 하나인 옥상정원의 개념에 충실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건축물의 경사면은 외형적으로는 확실히 탈원근법적인 시도인 듯 보이지만 개념적으로는 여전히 고전 기하학적 방법론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

위의 두 사례에서 보듯이 폴딩 건축의 경사 바닥면은 사각의 규칙적 건축의 큰 틀 속에서 부분적인 파격의 요소로 사용된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모더니즘 건축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외형적으로는 확실히 기존의 모더니즘 건축과는 차별적이다. 특히 바닥이라는 요소의 역할이 ‘배경’에서 ‘그림’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바닥이 공간 구성요소로서 건축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더욱 근본적이고 능동적인 접근은 어떤 식으로 모색되어야 할까? 아마도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단지 바닥의 계획에만 국한된 변화가 아니라 건축계획 전체의 차원에서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구겐하임 뉴욕과 롤렉스러닝센터의 사례를 통해 타진해보고자 한다.


4. 사영기하학적 접근: 구겐하임 뉴욕, 롤렉스러닝센터의 왜상적 공간

구겐하임 뉴욕 및 롤렉스러닝센터는 기존 랜드스케이프 건축과 비교할 때 바닥면의 사용 범위를 수직적 동선 기능을 넘어서 공간 구획을 포함한 건축물 전반으로 확장한 경우이다. 이 건축물에서 경사진 바닥면이라는 건축 요소는 건물 전체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사례들은 어떻게 바닥면이 공간구성에서 단지 ‘배경’이 아니라 ‘그림’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아가 어떻게 라캉이 규정하는 왜상을 3차원 공간에 적용하여 건축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앞서 기하광학적 원근법의 2점 투시도에서 수직선은 항상 직각을 유지하고 이와 연계하여 바닥은 평평함을 전제로 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투시도에서 바닥이 기울어진다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배경에는 새로운 선이 나타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배경의 바닥선과 그림의 수평선이 혼합되어 그림/배경의 경계가 없어져버린다. 더 나아가 공간의 위치를 확인하는 수직선이 없다면 거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 투시도는 공간의 부피(공간감)를 알 수 없는, 원근법이 해체된 상황이 된다.

프랭크 로이드라이트의 구겐하임 뉴욕은 전시 동선을 위한 나선형의 경사로를 적용한 건축물이다. 전시 공간과 통로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산책하듯이 내려오면서 전시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동선 계획 개념에 따라 경사진 바닥이 건축물 전체의 조형과 내부공간을 주도하게 해놓았다. 또한 중앙 홀은 비어 있으며 주변에는 수직선을 구성하는 벽과 기둥이 없어 위치 확인을 위한 기준선이 없다. 이처럼 건물 중앙의 개방된 홀을 나선형의 경사로가 둘러싸고 있기에 홀을 중심으로 양측 경사로에서 상대편을 마주 볼 때 양측이 반대 방향의 경사 각도로 교차되고 시점과 화면에서 서로를 상대적인 각도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경사면의 각도는 더욱 왜곡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즉 이곳에서 맞은편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은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인 기준선이 없이 비틀린 장면을 바라보면서 혼란스런 공간 인식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해 기하광학적 원근법에 부합하는 시각 장이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Fig. 3. 
Guggenheim New York

구겐하임 뉴욕은 많은 예술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전시장의 바닥이 기울어져 관람을 방해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바닥선의 각도를 기준으로 할 때 전시작품이 삐딱하게 설치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겐하임 뉴욕의 내부공간을 일반인들은 비틀린 공간으로 인식함을 반증한다. 자신이 비틀린 내부공간 안에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든 대상과 시점을 연결하는 선형적 시선의 구도, 즉 기하광학적 원근법에 입각한 삼각 구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은 관람자가 시선의 주체의 위치를 점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 관람자는 작품을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공간 구조 자체가 관람자에게 응시의 상태를 강요하는 셈이다. 아마도 미셸 푸코라면 관람자와 관람대상 사이에서 시선-권력의 안정적 구도가 형성되지 않는 이러한 상황을 자신의 판옵티콘(Panopticon) 모델에 따라 지배-피지배의 위계적 관계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자유로운 공간이라며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SANAA의 롤렉스러닝센터가 속한 로잔연방공과대학(EPFL)은 1960년대에 캠퍼스를 개발할 때 모듈과 그리드를 기본체계로 삼았고 이후에도 그러한 체계에 따라 건축물을 확장 배치하며 캠퍼스를 키워왔다. 확장의 방향은 1, 2단계에서 동서 방향으로 대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건축물을 배치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남동측에 여유 공간이 생기게 되어 본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롤렉스러닝센터는 외부인도 사용할 수 있는 건물로서 남측의 주요 간선도로 및 북측의 대학에서 모두 접근이 가능한 상황이다. SANAA는 다방면에서의 접근을 연결하도록 조형적으로 방향성을 갖지 않는 비례의 판형을 통해 정면이 없는 중립적인 조형성을 갖게끔 계획했다. 여기에 주 출입구를 한 곳에 배치하지 않고 사면 모두에 배치함으로써 전체 캠퍼스를 대상으로 하는 연결 기능성을 강조하는 “판형의 네트워크”[8]를 구성했다. 아울러 건축물 내외부의 차이가 부각되지 않도록 “내부화된 외부”[9]를 통해서도 건축물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입면에서도 지붕판과 바닥판을 제외한 수직면은 전면 유리로 구성하여 투명성을 통해 내부의 바닥면이 외부 공간과 연결되도록 유도했다.

도서관으로서 롤렉스러닝센터의 건축적 목표는 교류를 위한 연결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정보의 매체가 책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대 도서관 역시 다양한 미디어를 배려해서 공간의 성격을 다양화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보를 상호 교환하는 방식을 위한 교류의 공간도 필요하다. 교류는 계층간, 세대간, 성별간, 문화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에 공간도 경계로 구획하기보다는 개방적으로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우연한 만남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롤렉스러닝센터의 경우 프로그램은 모두 단일한 층에 오픈 플랜으로 배치함으로써 동일한 바닥에서 쉽게 교류와 연결이 이루어지도록 배려했다. 세부적으로 프로그램은 학습공간과 카페, 식당, 은행, 출판사 등 성격이 다른 시설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시설을 구분할 필요성도 있었다. 이를 위해 칸막이벽 대신 중정을 구획하거나 공간별로 바닥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공간을 나누었으며 다시 서로를 연결하기 위해 높이의 차이를 연결하는 경사를 주는 등 느슨한 구획을 시도하였다. 바닥은 전체적으로 곡면으로 구성되고 천장/지붕도 바닥을 같이 따라가며 굴곡을 이루면서 동시에 공간의 구획도 가능해진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볼 때에는 내려가는 천장에 의해 시선이 단절되어 공간 구획의 효과가 생겨나고 반대로 낮은 곳에서는 높은 쪽으로 올라가는 바닥에 둘러싸인 위요감으로 영역을 인식하게 된다.

한편 건축물 내부공간에서 칸막이벽 없이 오픈 플랜으로 공간을 구획할 때에는 실질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하는 만큼 전이 공간이 필요하다. 전이 공간은 그 거리만큼의 공간을 신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용도상의 공간에 보조적 기능을 더할 수 있다. 즉 느슨한 경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바닥이 평평하지 않은 공간은 사용상 기능적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평면계획처럼 기능상 필요한 면적으로만 구획하는 벽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전이 공간을 공간 구획의 취지에서 감안하여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 전이 공간은 평평하지 않기에 특정한 용도로 지정될 수 없고, 사용자들은 그곳을 유휴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유휴 공간은 용도가 없는 모호한 곳이다. 역설적으로 그곳에서는 어떠한 행위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두 개의 중정 사이에 좁고 길게 형성된 복도에는 통로로서의 폭보다 더 넓은 공간이 할당되어 있다. 이곳을 사용자들은 통로로 사용하는 한편 여유 공간으로 인식해서 바닥에 앉아있기도 한다. 혹은 휴식하거나 정보를 검색하는 공간일 수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과 소통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이 공간은 공간을 구획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건축물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인 교류를 위한 곳이 된다.

고전 기하학적 원근법에 부합하는 공간은 효율성을 바탕으로 원근법적으로 통합된 공간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취지와 일치한다. 따라서 출입구에서 홀과 복도를 거쳐 최종 공간으로 도착하는 선형적인 동선 체계를 가장 효과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롤렉스러닝센터의 동선은 주 출입구에서 홀과 복도로 연결되는 선형의 체계를 버리고 교류를 위해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하게 했다. 여러 방향에 출입문이 배치되었으며, 주 출입구라고 설정된 부분도 전체 건물에서 보면 하나의 복도에 지나지 않아 전체적으로 위계 없는 비선형적 동선 체계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동선 체계는 특정한 용도가 지정되지 않은 전이 공간과 함께 내외부로부터의 다양한 연결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이 건축물 계획의 근본적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비선형적인 체계와 용도 없는 유휴공간의 존재는 사전에 어떤 공간의 기능을 지정해두지 않겠다는 건축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비선형 체계 안에서는 동선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으며 용도가 지정되지 않은 유휴공간의 바닥면 역시 평평하지 않아 사용자가 그곳에서 어떤 행위를 할지 예상할 수 없다. 건축가의 의도대로 사용자를 유도할 수 없는 이러한 공간은 지배-피지배의 위계적 구도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다.


Fig. 4. 
Rolex Learning Center

유휴공간은 용도상 빈 상태, 구멍이 뚫린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상징계가 실재의 차원을 중핵으로 삼아 구성되듯이, 롤렉스러닝센터라는 상징계는 특정한 기능적 목적성이 할당되어 있지 않은 이 유휴공간을 중핵으로 삼아 구성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휴공간은 롤렉스러닝센터의 실재적 차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건축물의 특징적 선은 곡면 바닥과 곡면 천장이고, 내부공간을 구획하는 수직선은 최소화되어 있다. 즉 공간을 구획하는 수직벽이 없기에 내부공간에서 전개되는 장면들은 수평선인 바닥선과 천장선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낮은 위치에서 바라볼 때 공간의 끝부분은 높이 올라가는 언덕 위의 끝부분이다. 반대로 높은 위치에서는 천장선이 내려오면서 시야를 막고 있기에 공간성을 인지하게 해준다. 하지만 직선을 이루고 있지 않을뿐더러 명확하게 선을 형성하지도 않기에 이 공간 안에서는 거리를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수직선이 없는 곡면 바닥 공간에서는 수평 수직의 기준선이 없는 곳, 오직 비뚤어진 선들로만 이루어진 장면을 보게 된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기하광학적 원근법에 입각하여 공간을 인식할 수 없기에 시선의 주체는 무한히 뻗어나가는 무한점과 관계하게 된다. 이처럼 주체가 소실점에 대응하는 위치를 점유하지 않을 때, 비뚤어진 장면을 바라보는 시각성은 시선이 아니라 응시의 차원과 관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건축물의 구불구불한 공간성은 정확히 라캉이 규정한 왜상의 형상이다.


5. 결론: 건축적 범주로서의 왜상의 가능성

건축설계에서 효율성은 가장 기초적인 요구사항이다. 건축이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인 한, 기능성의 측면에서 효율성의 추구는 아마 가장 보수적으로 유지될 완고한 요구사항일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의 예술적 욕망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마련이고 건축의 역사는 그처럼 새로운 시도들로 채워지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하기조차 황당했던 건축적 시도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실제 건축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차이를 희망하고 모색하는 건축가들의 부단한 노력과 실험정신 덕분일 것이다.

라캉은 예술이란 기존 의미작용의 습관화된 코드나 스테레오타입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 단독적 기예를 이용하는 것이고 이는 마치 장인이 단독적 기예를 이용해서 도자기를 구워내듯이 어떤 구멍을 중핵으로 해서 쓸모가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0]. 여기서 쓸모란 상징계 안에서의 기능성이 아니라 실재계와 관련한 쓸모, 즉 무의식적 진실의 인식 가능성을 가리킨다. 결국 왜상의 논리는 환영적으로 구성한 상징계의 허구를 깨닫게 하는 ‘다른’ 시각성의 존재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건축 공간의 요소 중 바닥은 왜상의 논리가 파고들 수 있는 마지막 범주로 나타났음을 확인했다. 바닥면은 그 공간의 사용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기 때문에, 평평한 바닥이라고 하는 모더니즘 건축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개혁적 방향은 쉽게 나타나기 어려웠다. 또한 바닥면에 대한 파격적 접근이 초래하는 어색함과 불편함은 건축물의 단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건축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그리고 오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실험들에 힘입어 바닥면의 계획에서도 극적인 파격들이 시도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완전한 왜상 건축으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으로서 에듀카토리엄과 요코하마 국제터미널의 파노라마적 공간성을, 그리고 본격적인 왜상적 공간성을 보여주는 구겐하임 뉴욕과 롤렉스 러닝센터의 사례를 분석해 보았다. 롤렉스러닝센터의 파격은 애초에 설계경기에서 지정된 면적의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면적을 추가함으로써 가능했다. 그것은 기능적 불편함 없이 바닥면을 새로운 개념의 건축적 요소로 탈바꿈시킨 성공적인 실험이었다.

본 연구는 새로운 건축 개념의 정립을 위해 왜상 이론을 제시했다. 왜상은 관람자(혹은 사용자)를 친숙한 기하광학적 원근법의 시각성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각성의 기표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모더니즘적 건축의 원칙에 충실한 건축물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향후 기존의 통념을 벗어나 왜상적 공간성을 구현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바닥면뿐만 아니라 다른 건축 요소들과 관련해서도 더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게 되면 고착된 모더니즘 건축의 영향력은 대폭 축소될 것이다. 이제 건축은 효율성의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재고해야 한다. 앞으로는 기술과 산업발전의 양상에 따라 바닥면이 반드시 평평해야 할 이유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효율성은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이는 미래 건축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References
1.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정장진 옮김, 서울: 열린책들, 1996, 2011(11쇄).

Sigmund Freud, Trans J.J. Jung.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9th, Korea: Openbooks, 1996, 2011(11th Print).
2. 홍준기, 르네 마그리트 회화 분석: 라캉 예술론의 관점에서, 한국: 철학과 현상학 연구, 제40호, 2009.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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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옮김, 서울: 새물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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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 Kim, The Inside of Love, Korea: Jamobook, 2017, 07, p.37.
5. 자크 라캉, 앞의 책,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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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연준, 르 코르뷔지에의 보이드에 의한 자유로운 평면 구성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제284호, 2012. 06, p.160.
Y. J. Kim, A Study on Le Corbusiers Plan Libre in Terms of Void, Korea: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28(4), 2012. 06, p.160.
7. 남수현, 건축적 랜드스케이프 디자인 방법 중 곡면바닥구성에 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4권 5호, 2018. 05, p.131.
S. H. Nam, A Study on Undulated Planes of Architectural Landscape Methodology, Korea: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34(5), 2018. 05, p.131.
8. 박종진, 남성택, EPFL 롤렉스러닝센터에 대한 연구, 한국: 대한건축학회논문집, 제295호, 2013. 05, p.54.
J.J. Park, S.T. Nam, A Study on EPFL Rolex Learning Center, Korea: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Planning & Design 29(5), 2013. 05, p.54.
9. 위의 글, p.54.
ibid., p.54.
10. 김소연, 앞의 책, p.28.
S.Y. Kim, op. cit., p.28.